외신들 “韓정치 불확실성 장기화 전망…외교·경제 타격”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이후 탄핵안 표결이 무산되면서 한국의 정치적 교착 상태와 그에 따른 불확실성이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주요 외신들은 이번 사태로 한국이 경제적·외교적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의 실패한 계엄령 시도로 인해 여권에 권력 공백이 생겨 ‘헌정 위기’로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고 전했다.
NYT는 한국 헌법에 따라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탄핵되지 않는 한 대통령직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주목했다.
NYT는 대통령실에 정통한 정부 고위 소식통을 인용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자신을 정부의 의사 결정권자로 내세우며 대통령이 더 이상 국정을 운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윤 대통령은 사임, 탄핵 또는 선거를 제외하고는 법적으로 누구에게도 권력을 이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윤 대통령은 이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의를 재가하며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NYT에 “한국은 대통령이 결정도 못 내리고, 지침도 못 내리고, 명령도 못 하는 상황에 있다”며 “우리는 대통령이 있지만 무정부 상태에 있다”고 짚었다.
이 매체는 또한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 증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 이후 미국과의 동맹 관계 등 여러 외교 과제에 직면해 있지만 정부 책임자가 불명확해지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심화됐다”고 진단했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이번 사태는 민주주의의 건전성과 신뢰성에 대한 문제를 드러내 해외 동맹국들 사이에서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약화시켰다”고 평가했다.
한국군이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야 할 경우 누가 명령을 내릴지도 의문이 제기됐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법적으로 윤 대통령은 여전히 군통수권자”라며 “북한이 남한의 정치 상황을 시험하기 위해 도발을 감행한다면 최고사령관으로서의 권력을 재확인할 것인가? 그렇게 되면 권력을 둘러싼 싸움이 벌어질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블룸버그 “금융시장, 韓 자산 변동성 확대에 대비”
금융시장에서도 윤 대통령 탄핵 표결 무산에 따라 한국의 정치적 교착 상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트레이더들은 한국 자산이 지속적으로 변동성을 보일 것에 대비하고 있다”며 “정치적 위기가 심화한 후 원화와 주식이 압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계엄 선포 이후 원화는 하락세를 보였고, 코스피는 2.9% 하락했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리서치센터 상무는 “탄핵안이 7일에 통과됐더라면 끝났을 텐데 윤 대통령은 여전히 군을 장악하고 있다”면서 “여당의 보이콧은 국내 불확실성을 장기화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며 내수는 관광객 유입이 필요한데, 관광수지가 이미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번 사태로 상황이 더 악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내년 1분기 中 관광객 19% 감소 전망도
블룸버그 산하 연구기관인 블룸버그인텔리전스는 내년 1분기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이 계엄령 선포 후 사회 불안에 대한 우려로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한 83만명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윤정인 피보나치자산운용글로벌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사태가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면서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성은 업종별로 다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수출 기업들이 곧 반등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투자자들은 다음 분기 기업 실적에 집중하고, 원화 약세의 영향을 평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경제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관리하겠다며 필요 시 가용 수단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와 한국은행이 공조해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에 대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인터치캐피털마켓의 션 캘로 수석 외환 애널리스트는 “투자자들의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한국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탄핵 투표 무산에 대한 실망감이 있을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버티고 국민의힘이 그를 탄핵으로부터 보호하는 한 시장은 정치적 마비를 두려워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