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남성 경쟁자들을 괴롭히는 기술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예비 선거 기간 동안 도널드는 자신을 크게 부풀리고, 목소리를 착 깔고 상대를 비하하는 별명으로 모욕하면서 불쌍한 동료 후보들을 짓뭉겠다. 그는 스테로이드가 넘치는 수컷 침팬지처럼 거들먹거리면서 예비선거를 사실상 남성성이 과다하게 분출되는 몸짓 언어 경연장으로 바꿔놓았다.”(프란스 드 발,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알파(우두머리) 침팬지의 특히 효과적인 지배 매커니즘은 ‘돌진 과시’다. 알파 수컷은 본질적으로 광란에 빠져 근처의 다른 수컷을 향해 돌진하면서 비명을 지르고 야유하고 흉포한 몸짓을 보여준다. 트럼프의 선동적인 트윗은 인간 버전의 ‘돌진 과시’다.” (댄 맥애덤스, 2017년 ‘가디언’ 칼럼)
트럼프 1기 때는 그를 침팬지 알파 수컷의 행태와 비교하는 기사와 연구가 쏟아졌다. 과거 인간에게 절대적이고 독보적이었다고 했던 지능과 감정, 그리고 정치사회적 생활이 포유류 특히 오랑우탄, 침팬지, 보노보 등 영장류동물과 공유하는 진화의 결과임을 밝히는 동물학과 사회, 인류, 심리학이 발전한 데 따른 것이었다. 영장류동물학의 대가인 제인 구달은 2016년 9월 미 시사주간지 ‘디 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많은 면에서 트럼프의 행동은 수컷 침팬지와 수컷 침팬지의 지배방식을 떠올리게 한다”며 “서열의 꼭대기에 오르려는 수컷들은 경쟁자들에 과시하기 위해 발을 구르고 땅을 치고 나뭇가지를 끌고 돌을 던진다”고 했다. 제인 구달은 이번 대선이 치러졌던 5일에도 워싱턴포스트(WP)에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것은 단지 우리 종(種)만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제인 구달은 트럼프를 명시적으로 지목하진 않았지만, 무리에게 폭력을 선동해 끔찍한 종족학살을 저지른 알파 수컷 침팬지의 사례를 들며 “(인간 사회에서 폭력과 충돌을 막는 법·제도적) 진보를 해체시키고 우리를 지배와 갈등으로 몰아 넣어 권력과 부에 대한 욕망을 채우려는 알파들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있다”고 했다.
미국 공화당 정치인 뉴트 깅그리치가 1995년 하원의장이 되기 위해 프란스 드 발의 저서 ‘침팬지 폴리틱스’를 지지자들에 전했을 때, 마치 성경의 예언을 실현하는 예수처럼 10여년 후 트럼프가 영장류 정치의 완벽한 표본으로서 두 번의 세기적인 집권을 하리라고는 물론 예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제인 구달을 잇는 저명한 영장류학자인 프란스 드 발은 이후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등을 펴내며 침팬지들의 정치적 행위, 이른바 ‘마키아벨리 지능’에 대한 연구의 지평을 넓혔다. 이를 대입하면 이번 미 대선은 단지 ‘알파 메일’로서의 트럼프 뿐 아니라 영장류 정치의 진화된 버전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고 할 것이다. 또 트럼프의 승리와 미국 민주당의 패배 원인을 또 다른 측면에서 드러낸다.
트럼프의 ‘마키아벨리 지능’ 혹은 알파 메일의 덕목
댄 맥애덤스 노스웨스턴대 심리학 교수는 트럼프의 1기 첫해에 쓴 에세이 ‘원시적 지도자의 호소:인간 진화와 도널드 트럼프’에서 “선거 기간 동안 민주·공화 양당 모두로부터 상습 거짓말쟁이, 성범죄자, 사기꾼, 자기도취자, 괴롭힘가해자로 거듭 묘사됐던 사람을 6300만명의 미국인들이 대통령으로 뽑은 이유는 무엇일까”라고 물었다. 숫자를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득표한 7600만명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맥애덤스 교수는 “높은 외향성과 낮은 우호성, 자기애적 동기, ‘전사(戰士)’의 라이프 스토리” 등 트럼프의 독보적 특성이 미국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국민들이 안보와 강력한 리더십을 갈망하는 때에 권위주의적인 역할을 맡기에 “완벽하게 적합해 보인다”고 했다. 또 “트럼프는 스스로 조성한 혼란 속에서조차 대통 령으로서 미국민들을 구원할 것이며, 마침내 우리는 안전하 고 강해질 것이며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고 했다.
영장류동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과 공유하는 ‘침팬지 폴 리틱스’의 특징은 알파 수컷의 위협적이고 공격적이며 과시 적인 몸짓과 기만·음모를 포함하는 권모술수, 강한 경쟁자와 대결하기 위한 베타·감마 수컷과의 동맹 등을 들 수 있다. 그 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프란스 드 발은 무리의 생존 보 장과 먹이의 원할한 공급과 분배, 위계 서열의 안정성 유지, 갈 등 해결과 암컷·새끼와 같은 약자 보호 등이 알파 수컷의 집 권 성패를 좌우한다는 연구 결과를 강조한다.
‘침팬지 폴리틱스’를 끌어들여 트럼프를 비판하려는 지 금까지의 시도는 주로 그의 캐릭터와 지배적 전략에만 초점 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미국민들이 그를 ‘아메리 카’라는 종족의 생존과 번영, 자원의 공급과 분배에서 조 바이든 현 정부나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보다 믿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그렇다면 미 우선주 의와 대외 강경노선, 반이민정책 등을 핵심으로 하는 ‘트럼 피즘’과 미국민들의 선택이 비이성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근거도 의미도 없다. 정치학자 해럴드 래스웰은 ‘정치’를 “누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획득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 회적 과정으로 정의했는데, 트럼프의 ‘약속’이 유권자들에 겐 더 분명했던 것이다.
미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2020년과 비교할 때 트럼프 의 성·인종·연령별 지지율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라틴계 와 30세 미만 유권자층이다. CNN 출구조사에선 라틴계 남 성층에서 지지율이 36%에서 55%로 19%포인트가 올랐고, 라틴계 여성층에선 30%에서 38%로 8%포인트 상승했다. NBC 출구조사에선 2020년 조 바이든 대통령이 30세 미만 유권자에게서 트럼프보다 11%포인트나 지지율이 높았으 나 이번에는 트럼프가 오히려 해리스를 2%포인트 앞지를 것으로 나타났다. 30세 미만 여성 유권자에서는 트럼프가 2020년엔 바이든보다 35%포인트 졌지만 이번엔 해리스와 의 격차가 24%로 줄었다. 영장류 정치학의 용어로 쓰자면, 기존 위계 서열의 안정과 강화를 바라는 백인 남성(트럼프 지지율 60%)·백인 여성(53%)·라틴계 남성(55%)의 과반, 라 틴계 여성(38%)·흑인 남성(21%)의 일부, 그리고 극소수의 흑인 여성(7%)이 트럼프 지지 연합을 형성한 것이다.
‘화난 침팬지’와 앵그리 투표
프란스 드 발이 자주 드는 유명한 실험이 또 하나 있다. 카 푸친원숭이가 주인공이다. 두 마리를 나란히 놓인 창살로 된 우리 속에 각각 넣었다. 두 마리는 서로를 볼 수 있었다. 그 리고 우리 속 조약돌을 우리 밖 연구자에게 꺼내주면 보상 으로 먹을 것을 줬다. 처음엔 두 마리에 모두 오이를 줬다. 이 때는 두 마리 모두 별 탈 없이 과제를 계속 수행했다. 그런데 한 놈엔 오이를, 또 다른 놈에겐 포도를 줬더니 변화가 생겼 다. 오이를 받은 놈은 처음엔 만족스럽게 먹었지만, 동료 원 숭이가 포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채자 창살을 심하게 흔 들며 미칠 듯 화를 냈다. 심지어 두번째 오이부터는 먹지 않 고 연구자 면전으로 던졌다. 원숭이는 오이보다는 포도를 훨 씬 좋아한다. 이 실험은 인간 뿐 아니라 동물들도 ‘공정 감 정’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행동주의 심리학이나 고전경제 학의 합리성 가설에 따르면 오이라도 계속 받아 먹는 것이 이익이지만, 카푸친원숭이는 그것을 포기했다.
미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민주당 정권을 심판했고, 이는 인플레이션과 생활수준의 저하에 대한 유권자들의 강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물론 먹 고 사는 문제가 크게 진전되지 못하거나 퇴보했다는 미 유 권자들의 인식이 이번 선거 결과의 바탕이 됐을 것이나, ‘문
제는 경제’라고만 평가할 정도로 정치적 선택 동기는 단순 하지 않다. 언제나 경제 지표 이면에 숨은 ‘부당함’과 ‘불공 정함’에 대한 유권자의 인식이 겉으로 드러난 숫자보다 중 요하다. 이번 선거를 ‘앵그리 투표’라고 하는 이유이다.
진보는 왜 실패하는가…‘지연된 보상’에 대한 불신
어린이 앞에 마시멜로를 하나 두고, 만일 먹지 않고 기다린 다면 돌아와서 하나 더 주겠다고 하고 어른 실험 참가자가 자 리를 뜨면, 당장 먹는 아이가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가 있다.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으로, 실험에 참가한 어린이들을 추 적 조사한 결과 기다린 아이들이 더 높은 학업·취업 등 성취 를 보였다. 미래의 더 큰 이익을 위해 당장의 욕구와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주저 없 이 눈앞의 먹이를 채가지만, 침팬지는 미래의 더 많은 보상을 위해 매우 강한 행동억제 능력을 보여준다. 침팬지 앞에 30초 마다 캔디를 떨어뜨리는 기계를 놓는 실험이 있었다. 언제든 지 떨어진 캔디를 가져가 먹을 수 있지만 그 즉시 기계는 작 동을 멈춘다. 더 오래 기다릴수록 더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이 다. 어떤 침팬지는 최대 18분까지 먹지 않고 버텼다고 한다.
이 실험은 인간 뿐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며, 그에 따라 현재의 행동과 욕 구를 통제한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경 험의 기억과 미래예측에 따른 행동의 계획과 결정은 포유 류와 영장류 진화의 중요한 결과이자 특징이다.
정치가 누가, 언제, 어떻게, 무엇을 획득할 것인지’를 결정 하는 사회적 과정이라고 할 때 카푸친 원숭이의 오이·포도 실험과 침팬지의 캔디 기계 실험은 사람들의 정치적 선택 에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 주제를 보여준다. ‘공정 감각’과 ‘보상의 시점 혹은 현실성’ 여부다.
이번 미 대선에서 해리스는 미국의 이상과 민주주의, 법 치주의를 내세우며 트럼프를 비판하고 공격하는데 집중했 으며 임신중지 이슈를 앞세워 여성 유권자층을 공략했다. 반면, 트럼프는 바이든과 민주당 정부의 경제 실패를 부각 시켰으며, 대외 강경 안보·통상 노선과 반이민정책을 기치 로 내세웠다. 해리스는 바이든과의 차별화에 실패했으며, 민주당은 경제에 무능하고 말만 번지르르한 엘리트 정당이 라는 이미지를 극복하지 못했다.
해리스와 민주당은 ‘미국의 가치’를 강조한 반면, 트럼프 와 공화당은 ‘미국의 이익’을 말했다. 유권자들은 인플레이 션 문제와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해리스는 ‘범 법자’인 트럼프를 공격하는데 총력을 쏟았고, 트럼프는 중 국, 그리고 이민자와 맞서겠다고 했다. 해리스의 여성 유권 자 지지율은 바이든과 별 차이가 없었으나 민주당은 노동 자층을 잃었고, 트럼프와 공화당은 라틴계와 20대 유권자 층을 새로운 연합군으로 얻었다.
진보는 흔히 평등과 연대, 포용이 ‘결과적으로는’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미 대선에서 취 한 해리스와 민주당의 전략도 다르지 않았다. 반면 트럼프 는 ‘당장’ 관세를 높이고 이민자들을 막고 전쟁을 끝낼 것 이라고 했다. 겉으로는 미국의 가치와 미국의 이익이 대결 하는 모양새였지만, 영장류 행동 모델로는 ‘지연된 보상’과 ‘눈앞의 보상’을 둔 게임이었다. 결국 미국민들은 더 확실하 고 더 가까운 보상을 택했다. 어린이나 침팬지가 지연됐지 만 더 많은 보상을 선택을 할 수 있는 전제는 약속과 신뢰 다. 30초마다 캔디를 토해내는 기계를 눈 앞에서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침팬지는 기다릴 수 있었다. 만일 30초 후에 도 기계가 캔디를 내놓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지금 눈앞의 캔디를 집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것이다. 진보가 종종 실 패하는 것은 스스로 입증하지 못한 ‘지연된 보상’을 강요하 기 때문이 아닐까. 검증되지 않은 ‘지연된 보상’을 내세워, ‘눈앞의 보상’을 택한 이들을 비난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