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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어나는 ‘리벤지 포르노’, 해답은 ‘올가미’ 처벌
[헤럴드경제=윤서형 인턴기자] 올해 대학교 4학년인 A 씨는 얼마 전 대학 동기와 ‘야동’ 즉 성인용 영상물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바로 동기가 ‘리벤지 포르노’를 찾아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불법 음란물 사이트를 이용할 때 실제 커플 같은 영상만을 찾아본다고 했다.

A 씨는 그건 명백한 불법이고 그를 보는 것도 범죄 행위라고 성토했다. 하지만 대학 동기는 “그게 실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며 “사실 그런 건 상관없다. 현실적인 게 좋아서 찾는다”라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말했다.

[사진=해당 이미지는 본 기사의 내용과 일체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

‘리벤지 포르노’는 보복을 목적으로 유포하는 성적인 영상물이나 사진을 뜻한다. 연인관계에서 상대방이 이별을 요구하면 이를 갖고 시중에 뿌린다고 협박을 하고, 급기야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최근 리벤지 포르노 범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발표한 ‘2016 범죄분석’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 중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는 2015년에 7730건으로 2006년 517건 대비 약 14배 급증했다. 몰카 범죄 피해자 성별로는 여성이 98%를 차지해 압도적으로 많다. 몰카의 범주 속에 들어가는 리벤지 포르노도 거의 비슷한 비율로 증가했다고 유추 가능하다.

[사진=게티이미지]

둘 만의 은밀한 추억이 범죄로=리벤지 포르노는 피해자가 죽음까지 결심하게 만드는 심각한 범죄지만 이에 대한 인식이 가벼운 것이 현실이다. 동영상 삭제 업체 산타크루즈컴퍼니 대표 김호진 씨는 올해 초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라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는 현재 포르노 산업이 불법이다. 합법적으로 성인용 영상물을 소비할 수 없는 사람들은 불법 성인 사이트를 찾아간다. 이 같은 사이트에는 리벤지 포르노로 추측되는 영상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몰카 동영상을 쉽게 접하면서 해당 범죄의 심각성에 점점 더 둔해지게 됐다. 이렇게 수요가 있기에 공급도 늘어나면서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제 3자의 유포 때문에 삽시간에 퍼져 피해가 심각해지지만 이들은 이미 ‘리벤지 포르노’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버린 상태다.

일부 피해자는 직접 성적인 영상물이나 사진을 남기는 데 참여한다. 교제 당시에는 이 같은 기록이 훗날 심각한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연인 간에 상대방이 성적인 기록물을 요구할 경우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서 마지못해 동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젊은 세대는 스마트 기기의 발전과 함께 자신의 시간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기는 데 매우 익숙하다. 이것이 연인과의 지극히 사적인 부분까지 영역을 넓히게 됐다는 시선도 있다.

지난해 8월 방송된 SBS 다큐 스페셜 ‘몰카천국 대한민국’에서는 비정상회담 출신 외국인 출연자들이 모여 한국의 성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프랑스 출신 로빈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성인용 영상물이 몰카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며 운을 뗐다. 이에 호주 출신 블레어는 “한국 사람들이 포르노를 쉽게 찾을 수 없고, 유교 때문인지 폐쇄적인 부분이 있어 몰카를 찾는 것 같다”라고 추측했다.

[사진=교육부 ‘학교 성교육 표준안’ 중 발췌]

“네 탓이야” 넘쳐나는 2차 가해자들=성범죄가 발생하면 일각에서는 잘못을 피해자에게 돌리곤 한다. “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닌 너도 잘못이야”, “그러게 왜 남자랑 둘이 밀폐된 공간에 있었어”등의 오류다.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들도 이 같은 시선을 피하기 힘들다. “성적인 촬영물을 남긴 네 탓”라는 인식은 리벤지 포르노 범죄를 잘못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들 뿐 아니라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려 2차 피해를 유발한다. 범죄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 교육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리벤지 포르노 범죄가 실린 기사에는 빼놓지 않고 피해자를 탓하는 댓글이 달린다. “여자가 좋아서 했다면 예외지”, “문란하게 행실 관리 못한 본인의 책임은 없나요?”, “남자가 몰래 찍는 건 그렇다 치지만 지들도 좋아서 찍은 건 지들도 책임이지 특히나 지들이 직접 찍어 전송한 건 니들 책임이야~~~정신들차려”와 같은 문장은 실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발췌한 것이다.

실제 이런 인식이 성교육에 반영된 실정이다. 재작년 네티즌 사이에서는 ‘성교육 실태’라는 내용의 글이 논란이 됐다. 교육부가 2015년 제작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 지도서는 피해자의 잘못을 암시하거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내용들만을 담아 비판을 받았다. 무조건 “문제가 될 영상이나 사진을 찍지 않는다”와 같은 교육이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를 바르게 구분하고 현실적인 도움이 되는 교육이 필요하다.

[사진=게티이미지]

해답은 올가미 처벌?!=현재 리벤지 포르노 범죄는 다양한 근거로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위 낮은 처벌이 더 많은 리벤지 포르노 범죄를 양산하고 있다며 최초 유포자, 이를 유통한 제 3자, 소비자 모두가 빠져나갈 수 없는 ‘올가미’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카메라 등으로 성적인 영상물, 사진 등을 촬영하거나 이를 판매, 유포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징역형이 선고 가능한 범죄지만 실제 판결에서는 양형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가벼운 처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김현아 변호사가 발표한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 등 실태 및 판례 분석’에 따르면 2011년 1월부터 2016년 4월까지 선고된 카메라 등 이용촬영죄 관련 1심 판결 1540건 중 무려 72%에 달하는 1109건은 그저 벌금형에 그쳤다. 이를 유포한 자들에 대한 처벌도 마찬가지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음란물 유포죄)의 1심 형벌은 벌금형 143건(64.41%), 집행유예 36건(16.22%), 선고유예 15건(6.76%), 징역형 13건(5.86%)으로 벌금형이 가장 많고 징역형이 가장 적었다.

주 감형 이유로는 가해자의 자백 및 반성, 피해자의 합의, 초범, 촬영 부위가 다리, 발목 등으로 수위가 약하거나 사진이 흐려서 미수에 그침 등이 있다.

피해자가 촬영에 동의를 한 경우는 처벌이 약해진다. 이 법의 제14조 2항에 "촬영 당시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사후에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리벤지 포르노 유출은 피해자가 죽음을 결심할 만큼 무거운 범죄로 처벌 수준을 높이는 법 개정이 마땅하다. 또한 동의 하에 찍은 촬영물이라도 명백한 성범죄로 인식해 예외 없이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시선이다. 여성인권 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고 여성호신술 ASAP 창시자이기도 한 김기태 씨는 “여성 인격을 말살하는 리벤지 포르노는 최초 유포자뿐만 아니라 유통 사이트 관계자, 소비자들을 모두 엄벌해야만 범죄율이 확실히 낮아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전문가들은 올바른 성 인식을 심어주는 도덕적 교육은 물론 실질적인 학습도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피해자에 대한 책임전가가 아닌 현실적으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제 중 성적인 영상이나 사진을 남기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주는 교육 역시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실제 리벤지 포르노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필요한 법적 조치와 대처방안,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 같은 정보를 알리는 것 또한 중요하다. 정부 차원에서의 교육과 캠페인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역설한다.

shy002120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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