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5박7일 미국 국빈방문 최대 성과로는 무엇보다 ‘워싱턴 선언’이 꼽힌다.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맞서 대북 확장억제(핵우산)를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한미 간 안보 협력 수준을 대폭 강화했다는 평가다. 70주년을 맞은 한미동맹을 우주, 사이버 영역까지 확장하는 성과도 냈다.
다만, 미국과 밀착하며 신(新)냉전 구도에 공개적으로 편입함으로써 중국, 러시아의 반발이 거세지는 것은 부담이다. 또, ‘핵공유’를 둘러싸고 한미간 온도차가 감지된 것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워싱턴 선언’, 확장억제 획기적 강화…尹 “나토 보다 더 실효성”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계기로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정의로운 한미동맹’을 구축하고, 자유 민주주의, 법치, 인권 등 핵심가치르 함께 수호하는 ‘가치동맹’으로서의 역할을 재확인했다고 자평했다.
특히, ‘한국형 확장억제’를 구체화한 ‘워싱턴 선언’을 두고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핵이 포함된 상호방위 개념으로 업그레이드 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확장억제 강화 방안을 정상간 별도 선언으로 문서화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윤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정상회담에서 채택한 ‘워싱턴 선언’은 핵협의그룹(NCG) 신설, 전략핵잠수함(SSBN)을 포함한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한반도 전개 확대 등을 골자로 한다. 미국의 핵전력 운용계획과 실행 과정을 한국 정부와 함께 논의한다는 의미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운용 중인 ‘핵기획그룹(NPG)’와 유사하다.
윤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후 진행된 공동기자회견에서 “이제 한미 양국은 북한 위협에 대응해 핵과 전략무기 운영 계획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전력을 결합한 공동작전을 함께 기획하고 실행하기 위한 방안을 정기적으로 협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또, 지난달 28일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 대담에서는 “(워싱턴 선언은) 1대1로 맺은 것이기 때문에 미국과 나토 회원국의 다자 약정보다는 더 실효성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평가했다.
한미동맹, 사이버·우주로 확장…우크라·대만 문제도 언급
한미 양국은 한미동맹의 영역을 기존 지리적 영역을 넘어서 반도체·배터리·바이오·퀀텀 등 첨단기술, 사이버, 우주 등에도 확대키로 뜻을 모았다. 이를 위해 양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주도로 첨단기술 협력을 총괄하는 ‘차세대 핵심‧신흥기술대화’를 신설하고 ‘전략적 사이버안보 협력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다.
또, 연내 설립될 우주항공청(KASA)과 미 항공우주국(NASA) 간 협력 토대를 마련하고 한미 우주협력을 강화하는 공동성명서도 체결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나사 고다드 우주센터를 방문해 “한미 동맹의 영역이 지구를 넘어 우주로 확대되고 앞으로 새로운 한미 동맹 70년 중심에 우주동맹이 있기를 기대한다”며 “나아가 양국 간 우주동맹이 우주기술, 경제 분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안보 분야로도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를 넘어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 해협 등 인도태평양 지역 현안과 관련해 목소리를 낸 것도 눈에 띈다. 민감한 국제적 현안에 보다 분명한 목소리를 내면서 ‘글로벌 리더국가’로서 위상을 제고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한미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력공격을 강력히 규탄하고, 기존 ‘인도적 지원’을 넘어 “정치·안보·인도적·경제적 지원 제공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지하겠다”고 했다. 또, 대만 해협 문제에 대해서도 “불법적인 해상 영유권 주장, 매립지역의 군사화 및 강압적 행위를 포함하여 인도·태평양에서의 그 어떤 일방적 현상 변경 시도에도 강력히 반대한다”고 적시했다.
尹-바이든, ‘초밀착 행보’…‘아메리칸 파이’ 부르고 미 의회 연설도 ‘호평’
윤 대통령이 이번 국빈 방문 기간 동안 바이든 대통령과 장시간에 걸쳐 일정을 함께 소화하며 정상 간 친밀감과 신뢰관계를 쌓은 것도 성과로 꼽힌다.
윤 대통령은 워싱턴DC에 머문 3박4일 동안 ▷한국전 참전기념비 헌화 등 친교일정 ▷공식환영식 ▷정상회담 및 공동 기자회견 ▷국빈만찬 등의 일정을 바이든 대통령과 함께 소화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소인수 정상회담에서 윤 대통령을 “나의 친구”라고 호칭하며 친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국빈만찬 말미에 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요청으로 돈 맥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한 것을 두고 양국 정상의 우호적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은 “미측으로부터 ‘역대 최고의 국빈만찬’이라는 평가를 받는 등 한미 양 정상간 각별한 유대관계를 형성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미측이 윤 대통령을 위해 ▷부통령·국무장관 주최 국빈오찬 ▷미 국방부(펜타곤) 국가군사지휘센터(NMCC) 및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 방문 ▷NASA 고다드 우주센터 방문 등의 일정을 준비한데 대해서도 “한미동맹의 다양한 면을 부각하는 일정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미 상하원 합동회의 의회연설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윤 대통령은 영어로 진행된 44분간의 연설 동안 기립박수 23번을 포함해 총 56차례의 박수를 받는가 하면, 연설이 끝난 후 미 상하원 의원들로부터 셀프카메라(셀카), 사인요청 등을 받기도 했다.
‘강한 반발’ 중·러 관리는 숙제…‘핵공유’ 온도차 논란도
다만, 한미의 이 같은 ‘초밀착 행보’에 대해 중국, 러시아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향후 외교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7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대만문제가 거론된 데 대해 한미를 향해 “잘못되고 위험한 길로 점점 멀리 가지 말라”고 경고했다. ‘워싱턴 선언’에 대해서도 “미국이 지정학적 사리사욕을 위해 지역의 안보를 고려하지 않고 한반도 문제에서 문제를 확대하고, 긴장을 조성했다”고 반발했다.
러시아 외무부 역시 “미국과 한국의 핵 합의는 역내 및 국제 질서를 더 불안정하게 만든다”며 “이러한 합의는 군비 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핵공유’를 둘러싼 한미 간 입장차 역시 논란거리다. 앞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한미정상회담 당일인 지난달 26일 워싱턴DC 현지 브리핑에서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국장이 “우리는 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라고 보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으며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통령실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보스턴 현지 브리핑에서 “용어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며 “미 당국자가 얘기한 것은 나토식 핵공유다. (우리는) 나토식 핵공유가 아니라는 것”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