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M&A로 시장 재편 가속화

파운드리, 낸드 시장 지형 변화 가시화

우크라發 반도체 필수 원료 공급 위축, 경제 안보 강화 등 M&A 시장 경색 우려

비우호적 대외환경에 K-반도체 ‘초격차’ 전략 수정 필요

“SK하이닉스 아니었으면 어쩔 뻔” 반도체 M&A전쟁서 삼성은? [비즈360]
SK하이닉스 이천 M16 팹 준공식에 참석한 SK 최태원 회장. [SK하이닉스 제공]

[헤럴드경제=문영규·김지헌 기자] “인텔, 엔비디아, AMD 무섭게 사냥하는데 삼성은 뭐하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인수합병(M&A)을 통한 몸집 불리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슈퍼사이클로 유례 없는 실적 호조 속에서 마련된 ‘실탄’을 바탕으로 시장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반면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은 잔뜩 웅크리고 있다는 평가다. 그나마 SK하이닉스의 인텔 낸드 사업 인수마저 없었다면 글로벌 반도체 M&A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 존재감은 더욱 가려질 수 있다는 분석도 따르고 있다.

“SK하이닉스 아니었으면 어쩔 뻔” 반도체 M&A전쟁서 삼성은? [비즈360]

최근 인텔은 이스라엘의 반도체 기업 타워세미컨덕터를 54억달러(약 6조5043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타워세미컨덕터는 자동차와 의료용 기기, 산업용 장비와 일반 소비자용 제품에 필요한 반도체와 회로를 공급하는 회사로 인텔은 지난 17일(현지시간) ‘인텔 인베스터 데이 2022’를 통해 차량용 반도체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최근 공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꾸준히 고속성장을 이어가며 지난해 500억달러(60조2250억원)에서 2025년 840억달러(101조1780억원)로 급격히 성장할 것이라고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진출을 대대적으로 선언한 인텔은 파운드리 강자인 대만의 TSMC와 2위인 삼성전자를 위협하며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가는 중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점유율은 TSMC가 52.9%로 과점하고 있으며 삼성전자가 17.3%로 뒤를 잇고 있다. 업계 9위인 타워세미컨덕터(1.4%)를 인수한 인텔이 파운드리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꿀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SK하이닉스 아니었으면 어쩔 뻔” 반도체 M&A전쟁서 삼성은? [비즈360]
[트렌드포스 자료]

인텔은 최근 딜이 무산된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ARM 인수 의향까지 밝힘으로써 M&A를 통한 반도체 시장의 패권다툼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인텔이 촉발한 M&A와 시장 재편은 낸드플래시 시장의 지형 변화도 가져왔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인텔의 낸드사업부 인수 1단계를 완료했다. 90억달러(약 10조8405억원) 규모의 전체 딜 중 70억달러를 1차에 마무리하고 오는 2025년 20억달러 잔금을 치뤄 인수 2단계를 마친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로 명실상부한 업계 2위 자리를 차지할 수 있게 됐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SK하이닉스의 시장점유율은 14.1%로 삼성전자(33.1%), 키옥시아(19.2%), 웨스턴디지털(14.2%)에 이어 4위였다. 그러나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인텔에서 법인명을 변경한 솔리다임이 5.4%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둘을 합산한 점유율은 19.5%로 키옥시아를 넘어섰다.

“SK하이닉스 아니었으면 어쩔 뻔” 반도체 M&A전쟁서 삼성은? [비즈360]
[트렌드포스 자료]

키옥시아와 웨스턴디지털은 1분기 생산차질이 예상되며 (합산)SK하이닉스 점유율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을 발판으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늘려 인수가 완료되는 2025년부터는 확고한 리딩기업으로 변모한다는 전략이다.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기업) AMD도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 분야 1위 기업 자일링스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2020년 10월 500억달러(약 60조2250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이후 1년 4개월 만에 인수가 마무리됐다.

AMD는 자일링스 인수로 회사가 보유한 반도체 설계 기술들을 확보하게 됐다. 자일링스의 그래픽, 고성능 컴퓨팅(HPC), 시스템온칩(SoC) 기술 등을 통해 AMD의 팹리스 업계 내 경쟁력은 더욱 강화됐다.

최근 무산되긴 했으나 미국 엔비디아 역시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 암(ARM) 인수를 시도했다. 660억달러(약 79조4640억원) 규모의 업계 최대 빅딜로 꼽혔으나 업계의 독과점 우려와 소송 등 규제당국의 저지로 인수를 포기했다.

이처럼 반도체 기업 간 합종연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대규모 M&A를 추진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발걸음은 더뎌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대외 환경은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네온, 크립톤, 크세논 등 반도체 제조 원료가 되는 원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생산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다.

네온의 경우 우크라이나 수입 비중이 23% 수준으로 알려졌다. 크립톤 수입 비중은 우크라이나 31%, 러시아 17%로 약 50% 정도이며, 크세논 역시 러시아 31%, 우크라이나 18%로 절반에 가깝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매출 대비 3개 특수가스 수입액은 0.13% 정도로 미미해 원가 상승에 따른 재무적 영향은 크지 않고, 재고 확보·공급선 다변화 등으로 대응하고 있으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물량 확보가 관건이다.

유럽의 상황은 각국의 경제안보 강화 움직임으로 이어져 규제당국의 영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미국과 중국 간 치열한 무역전쟁으로 반도체 업계의 M&A가 수차례 무산됐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삼성전자의 경우 메모리, 파운드리, 시스템 반도체 등 웬만한 기업규모의 사업부가 한 곳에 모인 회사라 결국 M&A 역시 사업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통한 리스크 감소 측면에서 다가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삼성이 인텔 등 경쟁사의 도전에 맞서기 위해 투자가 필요하지만, 좋은 인수를 하는 데 필요한 대외 여건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 아니었으면 어쩔 뻔” 반도체 M&A전쟁서 삼성은? [비즈3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