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어난 프랑스 파리의 대규모 테러로 유럽 여행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냥 눈 딱 감고 다녀올까도 생각해보지만, 결국 괜히 목숨 걸고 여행할 필요는 없다는 판단에서입니다. 그런데 막판까지 망설이게 만드는 게 있는데 바로 위약금(취소 수수료)이라고 하는군요. 개중에는 이게 아까워서 여행을 감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회사원 서은미(29·가명) 씨는 고민 끝에 다음달 초 다녀올 계획이었던 유럽 여행을 포기했습니다.
대신 항공요금, 숙박비, 철도사용료 등에 대해 총 50만원 가까이 되는 위약금을 울며 겨자 먹기로 물어야 했죠.
여행일자와 유럽내 이동구간을 변경하는 방법도 차선책으로 고려해봤지만, 휴가 날짜를 조정하기가 힘들고 행선지를 바꿀 경우 추가 운임과 세금을 더 부담해야 돼 끝내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8월 발생한 태국 방콕의 도심 테러 때에도 어쩔 수 없이 위약금을 물고 여행을 취소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여행사들은 여행객이 일정을 취소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정한 약관을 근거로 수수료를 청구하고 있습니다.
공정위가 제정한 ‘국외여행 표준약관’의 제13조(여행조건의 변경요건 및 요금 등의 정산)에 따르면 2가지 경우에 한해 여행자가 위약금 없이 여행을 취소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첫째는 ‘여행자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여행자의 요청 또는 현지사정에 의하여 부득이하다고 쌍방이 합의한 경우’입니다.
얼핏 보면 테러 위험도 여기에 해당될 것 같지만, 여행자와 여행사 쌍방의 합의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업체에서 미합의 의사를 밝히면 조항의 효력이 발생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천재지변, 전란, 정부의 명령, 운송·숙박기관 등의 파업·휴업 등으로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라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테러라는 문구가 명시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다는 이유로 수수료 부담은 여행객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외교부는 내국인들에게 해외 여행자의 위험수준을 알리고자 ‘여행경보 신호등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것이 되레 여행사들에게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 제도는 남색경보(여행유의), 황색경보(여행자제), 적색경보(철수권고), 흑색경보(여행금지)의 4가지 색상별 단계로 구성돼 있습니다.
흑색이나 적색의 경우 국가에서 해당 나라의 입국을 원천적으로 금하거나 즉각 떠날 것을 명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밑의 단계는 자제하거나 조심할 것을 당부하는 정도의 수준입니다.
근데 방콕 테러나 파리 테러 모두 각 지역에 황색경보만 발령이 됐습니다.
테러로 여행을 취소해도 여행사는 이를 근거로 불안감으로 인한 개인적 변심으로 처리하는 상황이죠.
파리테러 여파로 서유럽 여행 취소가 줄을 잇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11~12월 출발 서유럽 여행 누적 취소자는 지난 19일 현재 448명을 기록했습니다. 때문에 앞으로는 테러와 같이 불가항력적 요인 발생시에도 위약금이 면제될 수 있는 방향으로 약관이 개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서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