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년…치유의 길은…유가족 여전히 ‘분노’에 머물러 ‘외상후 성장’이끌도록 치료 지속…꾸준한 상담통해 안정화 절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지났지만 이분들의 상태는 여전히 사고 초창기에나 엿볼 수 있는 ‘분노’에 머물러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분노는 가시고 슬픔과 무기력함의 시기를 지나 회복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안산 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 부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수진 고려대 안산병원 임상초빙교수는 17일 유가족들의 현 상태를 집약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세월호 유가족들은 현재 ‘분노’를 원동력 삼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달리고 있다.

[사진]안산 단원고-copy(o)1

바다에 가라앉아 아직도 건져 올리지 못한 세월호 선체, 나아가서는 너무도 허망하게 자식을 떠나보낸 현실에 대한 ‘분노’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의 경우 처음 1~2일 가량은 현실감각 없이 멍한 상태를 보이고, 이후 충격과 분노 등의 단계를 거쳐 현실 부정 단계에 이른다.

슬픔과 우울, 좌절, 무기력감은 다음 수순이다. 이러한 긴 긴 터널을 지나야만 비로소 ‘외상 후 성장’을 할 수 있다. 상처와 고통을 밑거름 삼아 더욱 강인하고 성숙한 삶의 궤도에 오르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16일 팽목항 담화에서 유족들에게 “이제는 가신 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그분들이 원하는 가족들의 모습으로 돌아가 고통에서 벗어나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시기를 바란다”며 “좌절은 희망을 잃게 하고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들어 간다. 우리 스스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살아나가야만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김 교수는 “세월호 유가족들 대부분이 이런 절차를 단계적으로 밟아나가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특히 자식 잃은 아버지들의 알코올 의존도가 부쩍 높아졌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도 상당수다.

그럼에도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참사 초기나 지금이나 상담센터를 제 발로 찾는 세월호 유가족들은 거의 없다.

이에 센터의 상담사가 이들을 직접 방문하는 ‘사례관리’ 형태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유가족의 90%가 사례관리를 받고 있다.

상담 치료의 최종 목적지는 4월 16일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다시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 교수는 “외상후 성장까지는 아니더라도,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해서 일상적인 기능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서 성숙하게 성장할 수 있는 걸 목표로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사회의 지지’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일반 국민들도 세월호 참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더는 세월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보기도, 듣기도 싫다”는 것은 트라우마의 전형적인 형태인 ‘회피’ 반응과 같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세월호란 단어만 봐도 참사의 고통이 떠올라 외면하고 싶은 마음은 잘 알지만, 그럴수록 유가족들은 이 아픔을 공감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욱 상처받는다”고 씁쓸해했다.

김 교수는 “재난현장 심리지원치료에 있어 중요한 성공 요인은 ‘뭘 해줬느냐’보다 ‘옆에 같이 있는 이들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상담을 이어나가느냐’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주변에 대한 불신이 가득찬 상황에서 유가족들은 새로운 상담사들에게 이미 했던 얘기들을 반복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면서, “꾸준한 상담을 이어나가기 위해선 제도적으로도 안정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혜림ㆍ양영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