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비자금 유입 여부 등 집중 조명
재산 분할액 조정 정도가 관건
[헤럴드경제=정석준 기자] 대법원이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 상고심에 대한 심리를 이어가기로 했다.
향후 대법원 심리 결과에 따라 1조4000억원에 육박하는 2심의 재산 분할 금액이 조정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천문학적인 현금 마련을 위한 SK 주식 매각과 이로 인한 경영 불확실성 등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는 평가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 측은 이날 대법원의 심리불속행 기각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받고 향후 ‘노태우 비자금’ 유입과 특유재산 여부 등을 놓고 전개될 서면 공방 준비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2심 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법이 정한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대법원이 본안 심리 없이 바로 기각하는 제도다.
대법원이 사건을 본격 심리하기로 하면서 향후 상고심에서는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실제로 SK에 유입됐는지와 최 회장이 선친인 고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물려받은 SK㈜ 지분이 특유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이 집중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1조3808억원이라는 역대 최고액을 지급하고 위자료 20억원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는 2022년 12월 1심이 인정한 위자료 1억원과 재산분할 665억원에서 20배 넘게 늘어난 금액이다.
특히 2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SK그룹에 유입되고 그룹 성장에 노 전 대통령의 역할이 있었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500페이지 분량의 상고 이유서를 내고 최 회장의 SK 지분은 선친에게 물려받은 ‘특유재산’이기 때문에 재산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지난 6월 2심 판결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재산 분할에 관해 객관적이고 명백한 오류가 발견됐다”며 상고 결심 배경을 밝히기도 했다.
이후 2심 재판부는 최 회장 측이 지적한 대한텔레콤(SK C&C의 전신)의 주식 가치 산정 오류를 확인하고 판결문을 수정(경정)했지만, 재산 분할 금액 등 주문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이에 최 회장 측은 경정에 불복해 재항고장을 냈다.
2심 판결문 경정 결정에 대한 최 회장 측의 재항고 사건은 지난달 26일로 심리불속행 기간이 지나 대법원이 현재 심리 중이다.
여기에 대법원이 이혼 소송 상고심도 심리하기로 하면서 재계 안팎에서는 SK그룹이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는 반응이 나온다. 통상 가사 사건의 상고심 심리 불속행 기각 비율이 약 90%인데도 대법원이 이번 이혼소송에 대한 심리를 속행하는 데는 그만큼 다시 짚어볼 문제가 많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당장 1조3808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는 부담도 일단 덜 수 있게 됐다.
다만 최 회장과 SK그룹이 마냥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쟁점 중 하나인 특유재산을 놓고 최 회장 측은 민법 830조와 831조를 근거로 부부 한쪽이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뿐 아니라 혼인 중 자신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특유재산이라고 주장하지만, 노 관장 측은 사실상 이혼 재산분할 판례가 변경돼 유책 배우자가 무책 배우자를 맨몸으로 쫓아낼 길이 열린다고 맞서는 상황이다.
최 회장과 SK 측이 시간을 벌었다고는 해도 대법원에서 이혼 소송을 파기 환송한 경우는 2% 수준인 데다 파기환송까지 간다고 해도 이후 2심의 재산 분할액을 얼마나 낮출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최 회장은 6월 말 기준 SK㈜ 지분 17.90%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지주회사인 SK㈜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는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30.57%), SK이노베이션(36.22%), SK스퀘어(31.50%), SKC(40.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현금성 자산이 3천억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2심 판결 확정시 지분 매각이 불가피해 그룹 지배구조나 경영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해 왔다.
블룸버그는 “최 회장이 이혼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 지분을 일부 양도하거나 매각해야 한다면 최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국내 지배력 기준인 20%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며 “한국 최대 대기업 중 하나가 적대적 인수합병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