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희생양 된 임대주택

입주 저당잡혀 시공사와 협상서도 ‘을’

“내 집 마련 꿈이 악몽이 됐다”…1년째 가족과 생이별 피눈물 무슨일이? [부동산360]
인천 중구 미단시티에 준공된 ‘누구나집’ 영종 베네스트 위홈 골든마레. 시공사 측에서 승용차 등을 이용해 입구를 막고 있다[사진=독자 제공]

[헤럴드경제=박자연 기자]#.인천광역시 중구 미단시티에 위치한 ‘누구나 집 3.0’ 사업장 조합원 A씨는 가족들이 1년째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 지난해 10월 1096가구 규모 아파트가 다 지어지고, 입주만 남았는데 시공사인 동원건설 측에서 유치권을 행사하면서 1년 넘게 입주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5일 인천광역시 중구 운북동 1366-8 일원에 위치한 ‘누구나집(영종 베네스트 위홈 골든마레)’ 시범사업장은 준공 후 1년 째 입주가 지연되고 있다. 시공사 측에서 추가적인 공사비를 납부하지 않으면 입주를 할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협상이 마무리되고 있지 않은 형국이다.

A씨는 “정치인들은 표 달라고 할 때만 국민의 보금자리를 내세우고 사업에 문제가 생기면 입을 닫는다”며 “입주를 손아귀에 두고 날로 과해지는 건설사의 요구에 정책을 믿은 시민들만 고스란히 피해에 노출된 셈”이라고 말했다.

누구나집은 송영길 소나무당 대표가 인천시장 재임 당시 도입한 사업으로, 무주택자인 개인이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집값의 10%를 내면 10년 간 저렴한 임대료로 살다가 최초 공급가로 분양받는 민간임대주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후보 시절 공약으로 언급할 정도 부각됐지만, 현재는 사업의 책임소재조차 불분명한 모습이다. 협동조합, 시공사, 시행사, 대주단 등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보니 어느 고리 하나가 약해지면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이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주체도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미단시티 누구나집 입주 지연의 주된 원인은 시공사의 유치권 행사다. 전 시행사가 만기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금 2800억원을 갚지 못하면서 아파트가 지난 4월 공매에 넘겨질 위기에 처했지만 입주예정자들로 구성된 협동조합 누토피아가 새 시행사 지위를 취득하고 연체 이자를 지급하며 공매를 피했다. 그러나 이후 시공사인 동원건설이 물가 상승 등으로 오른 공사비를 우선 지급할 것을 요구하면서 입주를 막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조합원은 “이자비용으로 4000여만원씩 냈고 조합원들도 추가 비용이 더 발생할 것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입주 승인이 나지 않으면 대출도 나오지 않는데 추가 공사비를 먼저 지급하라 요구하는 것은 무리하다”고 토로했다. 현재 머물 곳이 없는 입주 예정자 일부는 텐트 노숙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조합은 입주 문제를 조속히 해결해달라며 중구청,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국회 등의 문을 두드렸지만 쉽지 않은 모습이다. HUG 관계자는 “유치권, 자기보증, 전 시행사 가압류 등 문제가 있지만 보증 발급 금지 사유인 유치권 행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구청 역시 “HUG 보증이 임대 공급 신고, 임차인 모집 계획 승인 등에 필요한 필수 구비 서류라 (입주) 문제를 해결할 별다른 방도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박상우 국토부 장관 역시 “보고 받기로 현실적으로 공사비 지급 문제와 가압류 등 경제적인 상황이 선행돼 있어 이 문제가 안 풀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시행사와 시공사 분쟁도 있다고 들었다”고만 답했다. 조합원 B씨는 “다들 ‘책임이 아니다’, ‘알아서 협상하고 오라’고만 하니 지칠 뿐”이라며 “정책을 믿은 사람만 바보가 됐다”고 한탄했다.

누구나집 시범사업지는 1차 6곳(인천검단 AA26·AA31·AA27·AA30, 화성능동 A1, 의왕초평 A2) 2차 4곳(인천 영종·검암, 광주 에너지벨리, 김포 전호지구)이었으나 대다수 사업이 좌초된 상황이다. 영종 미단시티 아파트는 2021년 2월 착공해 2023년 10월 준공됐다.

이번 누구나집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서민 주거 관련 정책에서 책임소재를 분명히 할 필요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 보금자리와 관련된 공약을 내놓고 결국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어서다. 김인만 부동산 컨설턴트는 “공급 정책을 내놓기만 하고 임기가 끝나면 ‘나 몰라라’하니 정책 자체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