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산 일대 국내 최대 은행나무 군락지
국토를 아름답게..이병철 회장 의지 품어
[헤럴드경제(용인)=함영훈 기자] 지금 에버랜드는 붉고 노란 단풍으로 장관을 이룬다. 단풍과 은행나무, 국화 등 10여 종 수만 그루의 나무들과 초화류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며 가을 정취를 뽐내고 있다.
반세기 넘게 숨겨져 왔던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나무숲이 공개됐다. 에버랜드 정문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인 경기도 용인시 신원리 향수산 일대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은행나무 군락지가 자리잡고 있다.
약 14만5000㎡(4.4만평) 부지에 은행나무만 약 3만 그루에 달하며, 밤나무, 참나무, 메타세콰이어 등 다양한 식물 자원들과 함께 울창한 숲을 형성하고 있다.
나무에 매달린 노란잎과 땅에 엎드린 노란낙엽으로 온세상이 황금색이 되었다. 이곳을 산책하면 없던 사랑도 생기고, 그간 소원했던 친구와의 우정도 살아날 것 같다. 방문객의 대화 속엔 미학과 정담만이 오간다.
▶비밀의 숲과 영험한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숲은 에버랜드가 1970년대에 산림녹화를 위해 은행나무 약 3만 그루를 식재한 이후 외부에 거의 공개하지 않고 관리해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향수산 자락에 오밀조밀 뿌리 내린 수많은 은행나무들은 햇볕을 더 받기 위해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 모습이 인상적이며, 늦가을이면 숲 전체가 황금빛 은행잎으로 뒤덮이며 일대 장관을 이룬다.
약 5km에 이르는 트레킹 코스를 통해 은행나무숲길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고, 중간중간 앉아서 쉴 수 있는 나무의자와 명상장, 그리고 은행나무숲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도 있다.
은행나무는 현존하는 식물 중 살아있는 화석으로 대접받는다. 끈질긴 생명력, 품격, 아름다움, 항암 치료제로서의 건강기능을 모두 갖춘 영험한 나무이다. 그래서 동양에선 궁궐이나 성균관 문묘 등에 은행나무로 조경한다. 남아시아에서 영험하게 여기는 반얀트리와 비슷하다.
사실 이곳은 밤나무 군락지였고, 미학적인 요소를 더하기 위해 사이사이에 은행나무를 심었는데, 지금은 은행나무가 더 강한 수종으로서 살아남고, 숲의 아름다움과 품격을 더했다.
활엽수 같지만 침엽수이다. 빙하기, 온난화기 등 지구상 숱은 변고가 있었고, 이 때마다 은행나무는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더 비축하려고 잎을 넓게하는 진화를 거듭했다고한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오직 1종 1속 1과 1목 1강 1문만이 존재하는 희귀한 식물이다. 계문강목과속종은 중고교때 다 외웠을 것이다.
우리는 은행나무를 여러 곳에서 보는 행운을 갖고 있지만, 실제 은행나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멸종위기종(EN, Endangered)에 들어있다. 종자로 후손을 퍼뜨리는 은행나무는 새나 다람쥐 같은 동물들이 은행 열매를 먹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서식지가 확대되기 어렵다. 그만큼 수도권에 위치한 이 곳 에버랜드 은행나무숲의 자연적인 보존가치가 크다는 얘기다.
▶걸어다니는 웰니스= 은행나무 숲은 이번 주말까지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다른 때엔 이 숲 입구에서 기업행사를 할 때 가볼수 있다. 5일엔 예술의 전당팀, 삼성전자팀이 이곳에서 단합대회를 했다.
요즘 대세, 숲캉스를 통해 기업 발전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향수산 일대엔 잔디광장, 명상돔, 생태연못, 전망대 등이 갖춰진 프라이빗 명품숲 ‘포레스트 캠프’가 에버랜드에 의해 조성돼 있다.
2022년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고, 은행나무숲길을 포함한 대자연을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트레킹 코스를 정비했다.
트레킹 뿐만 아니라 은행나무숲 속에서 해먹에 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전문 강사와 함께 명상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숲 치유 프로그램도 시범 운영중이다.
세계적인 인기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 출연했던 배우 겸 명상요가 전문가가 강사로 초빙되기도 한다.
지금까지는 주로 신입사원 교육이나 기업 기념 행사, 고객 초청 이벤트 등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특별한 행사를 진행하고 싶은 기업과 단체 중심으로 개방돼 좋은 반응을 보여왔다.
이러한 고객 인기에 에버랜드는 올 가을 개인 고객에게도 은행나무숲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비밀의 은행나무숲' 산책 프로그램을 지난달 25일부터 오는 10일까지 시범 운영하고 있다. 황금빛 은행나무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맞췄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국내 최대 규모 은행나무 군락지에서 진행되는 다채로운 숲 치유 체험은 물론 인근 호암미술관 예술 체험도 포함돼 휴식과 힐링, 그리고 문화 향유의 기회까지 함께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매주 금토일에 하루 3회씩 진행되고 회당 최대 30명까지만 참여할 수 있는데, 지난달 18일 에버랜드 홈페이지에서 진행된 참가자 모집은 시작 2분만에 전회차가 마감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숲·정원 등 식물 콘텐츠 강화= 에버랜드는 숲, 정원 등 식물 콘텐츠 뿐만 아니라 주변 인프라를 연결하는 새로운 고객 경험을 강화해가고 있다.
에버랜드의 다른 시설 이용 없이 오직 정원 체험만을 희망하는 고객들을 위한 전용 티켓인 '가든 패스'를 올해 시범적으로 선보였는데, 지난 봄 하늘정원길(매화), 장미원 등에서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경험혁신아카데미에서는 에버랜드와 캐리비안 베이 뿐만 아니라 포레스트캠프, 은행나무숲, 분재원, 스피드웨이, 호암미술관 등 같은 단지에 위치한 체험 인프라를 고객이 원하는대로 모듈화해 이용할 수 있는 맞춤형 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다.
또한 긍정심리학에 기반한 마음건강 관리 프로그램인 '비타민 캠프'와 비일상적 체험을 통해 리더로서의 인사이트를 확장하는 '리더십 캠프'도 다양한 인프라를 활용해 경험할 수 있다.
에버랜드에선 튤립, 매화, 장미, 국화까지 4계절 꽃이 피어난다. 에버랜드는 장미축제(1985년)를 시작으로 튤립축제(1992년), 국화축제(1993년) 등 다양한 꽃축제를 국내에 처음 선보이며 우리 국민들에게 식물을 통한 힐링과 새로운 여가 문화를 선사해왔다.
포시즌스가든, 장미원, 하늘정원길, 뮤직가든 등 에버랜드 내에 위치한 다양한 테마정원에서는 계절별로 다양한 꽃들을 경험할 수 있다.
▶용인자연농원에서 포레스트캠프까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일대는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이 황폐한 국토를 푸르게 가꾸고 국민들의 식량자급을 위해 국토개발의 시범장으로서 경제조림단지를 구상한게 출발점이었다.
지금의 에버랜드 일대에 약 400만평 부지를 확보해 식량증산과 소득효과가 큰 유실수(有實樹)와 미래세대를 위한 장기수(長期樹)를 집중적으로 심었고, 양돈사업을 통해 거기에서 나오는 퇴비로 메마른 토질을 개량해 나갔다.
또한 불모지가 생산하는 땅으로 변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어린이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가족동산을 조성한 것이 자연농원이고 지금의 에버랜드가 됐다.
특히 밤나무를 주종으로 한 유실수 단지에는 호두나무, 살구나무, 은행나무 등을 심었는데, 밤, 호두, 은행 등은 영양가가 높아 곡수(穀樹)로도 불렸다. 당시 쌀이 평당 1백37원의 수익을 올리는 것과 대비하여 은행은 5백37원, 호두 4백98원, 살구 2백50원, 밤 2백45원으로 수익률도 높았다.
시련도 있었다. 1979년 초겨울 기온이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기록적인 한파가 용인 일대에 찾아왔고, 밤, 복숭아, 호두 등 많은 과실수들이 동해(凍害)를 입어 고사했다. 이듬해 봄, 수만 그루의 고사목을 벌채하고 가장 고사율이 떨어지며 강인한 생존력을 보였던 은행나무를 더 심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밤나무 고사 지역에 은행나무 묘목 3만주를 집중 식재했고, 지금은 우리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거대한 은행나무숲을 형성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