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체결된 계약관계는 무효 불가능
[헤럴드경제=양영경 기자] 전세 임차인에게 귀책 사유가 없어도 보증을 취소할 수 있도록 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약관 조항을 시정하라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권고했다.
공정위는 HUG의 ‘개인임대사업자 임대보증금 보증 약관’을 심사해 이 같은 내용의 보증 취소 관련 조항을 수정·삭제하도록 권고했다고 5일 밝혔다.
시정권고 대상 조항은 민간임대주택 임대인이 사기·허위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했거나 이를 근거로 보증을 신청한 경우, 집을 빌린 사람의 귀책사유가 없음에도 HUG가 일방적으로 보증을 취소할 수 있는 조항이다.
민간임대주택 임대인은 이 보증에 의무 가입해야 한다. 계약 종료 후 임대인이 임대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 HUG가 임차인에게 대신 돌려주는 구조다.
그러나 해당 조항 탓에 전세 사기를 당했음에도 보증 받지 못하는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부산에서 150여명이 무자본 갭투자를 한 1명에게 전세보증금 190억원을 떼였는데, HUG는 해당 약관 조항을 근거로 보증을 취소했다. 일부 피해자는 보증금을 받기 위해 HUG와 민사 소송을 벌이고 있다.
피해자들 신고로 조사에 나선 공정위는 임대인의 잘못으로 보증이 취소되는 것은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으로 약관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임대인으로부터 보증서 사본을 전달받은 임차인은 임대인의 채무불이행 시 HUG로부터 보증금을 지급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기대를 갖게 된다”면서 “문제의 조항에 따르면 이런 기대는 임차인의 잘못 없이도 임대인의 귀책사유만으로 깨지게 된다”고 했다.
아울러 보험계약자의 사기 등 중대한 과실이 있더라도 피보험자에게 책임 사유가 없다면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한 상법 규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위험만 고객에게 떠넘기고 사업자에게 법률상 부여되지 않는 해지권을 부여하는 부당한 조항이라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개인임대사업자의 보증뿐만 아니라 HUG의 법인임대사업자, 개인간 임대를 대상으로 한 보증 상품 약관에도 유사한 조항이 있음을 확인하고 역시 수정하도록 협의할 방침이다.
향후 HUG가 권고에 따라 이 조항을 시정하면 상품 가입 전세사기 피해자가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공정위는 기대했다. 다만 이미 체결된 계약 관계를 되돌려 무효로 할 수는 없다.
공정위 신용호 약관특수거래과장은 “시정권고 이후 HUG와 해당 약관조항에 대한 시정 협의를 진행하고 이행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