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 반대하는 딸에 앙심 품어 살해
현장 목격한 어머니도 살해
“데이트 폭력 극단적 형태로 드러나”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지난 5월 강남의 한 오피스텔에서 교제 중이던 여성과 그 딸을 칼로 살해한 박학선(65)씨가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유가족은 계획 범죄를 인정한 재판부의 판단에 감사를 표하면서도 “사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23부(부장 오세용)는 1일 살인 혐의로 기소된 박 씨에게 “영구히 사회에서 격리하고 자유를 박탈한다. 평생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며 피해자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여생동안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박 씨는 2024년 2월부터 피해자 A씨와 교제를 하던 중 A씨의 딸 B씨가 교제를 반대하자 흉기를 사용해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박 씨는 세차례 사별과 이혼을 반복했고 2016년부터 동거를 시작한 사실혼 배우자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박 씨가 사실혼 배우자가 있는데도 A씨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B씨를 살해한 점, A씨가 신고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살해한 점 등을 양형에 반영했다.
B씨의 남편이자 A씨의 사위인 유가족 C씨는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아쉬움을 표했다. C씨는 “재판부가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고 해서 다행”이라면서도 “사람을 2명이나 죽였는데 사형이 나와야 한다. (박 씨는) 단 한번도 사과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 씨는 재판 과정에서 우발적 범행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에 따르면 박 씨는 범행 전 피해자 A씨가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A씨의 휴대전화를 빼앗았다. 범행 직후 건물에서 유유히 빠져나와 휴대전화를 끄고 현금을 사용해 이동하며 흉기를 숨겼다. 또 사실혼 배우자에게 전화해 경찰이 찾아왔는지 묻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범행 이후 은닉해야 할 증거와 방법을 사전에 대략적으로나 구상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범행 후 행동은) 사전에 마음 먹은 행동을 실행한 후 발각·체포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취한 행동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 씨의 첫번째 표적은 B씨였다. B씨는 박 씨가 사실혼 배우자가 있는데도 A씨에게 혼인신고를 요구하고 강한 집착·폭력 성향을 보여 교제를 반대해왔다. 1심 재판부는 “B씨에 대한 범행은 A씨와의 사실상 불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방해가 된다고 판단된 A씨의 딸을 살해한 것에 해당한다”며 “도덕적 비난성이 높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도덕적 비난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살해한 행위”라고 했다.
살인 범죄가 교제 폭력의 연장선에서 나타났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박 씨는 A씨가 잦은 연락을 부담스러워하자 욕설과 폭언을 하고, A씨가 전화를 차단하자 예고없이 찾아가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언행을 보이는 경우 A씨와 주변 사람들을 살해하겠다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반복했다”며 “교제관계에서의 폭력이 장시간 지속적으로 반복되던 중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경우에 해당한다. 데이트폭력 경각심과 엄벌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범행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A씨의 신고를 막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도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도망가는 A씨를 향해서 ‘신고하라’는 말을 해서 A씨를 쫓아가게 됐다고 진술했다”며 “범행 발각이나 신고를 우려해 살인한 경우로 비난 동기 살인에 해당한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모녀 두 사람을 극히 잔혹한 방법으로 연달아 살해했다. 피해자들이 느꼈을 심리적, 신체적 고통의 정도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며 “특히 살해 현장을 발견한 B씨의 배우자 C씨가 받았을 정신적 충격의 크기는 언어로 표현할 수조차 없게 막대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