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통장 가입자 1년 새 36만명 줄어
젊은층 “가점 낮아 당첨 ‘하늘의 별 따기’”
전문가들 “가점제 위주 청약제도 개편해야”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주변에 신혼부부에 아이가 있어도 청약 떨어지더라고요. 결혼 안한 사람은 가망 없겠더라고요. 20살 때부터 매월 10만원씩 10년 이상 청약통장에 부었는데 결국 해지하고 아파트 매매했어요.”(30대 직장인 김 모씨)
“월 납입 인정액 25만원으로 상향한다고 하지만 저축 금액 늘리는 게 부담됩니다. 민간 분양이 대다수인데 공공주택 분양만 바라보고 기다리기 힘들어요. 차라리 빨리 돈 모아서 아파트 매수하는 게 빠를 것 같아요.” (30대 직장인 윤 모씨)
최근 고분양가에 과열 경쟁까지 겹치면서 ‘청약 무용론’이 힘을 얻고 있다. 청약통장 가입자가 1년 새 36만명 감소했을 정도다. 정부가 실수요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청약통장 납입 인정액 상향, 금리 인상 등 혜택을 늘리면서 청약통장을 해지하려는 행렬을 막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주택청약저축(청약통장) 보유자의 혜택을 늘리기 위해 제도를 개편해 지난 23일부터 본격 시행했다. 기존 연 2.0~2.8% 수준이던 청약통장의 금리를 연 2.3~3.1%로 인상했다. 2022년 11월 0.3% 포인트, 지난해 8월 0.7% 포인트에 이어 이번에 0.3%포인트를 올리면서 윤석열 정부는 청약통장 금리를 총 1.3% 인상했다.
아울러 공공분양 주택 당첨자 선정 시 월 인정 납입액을 10만원에서 25만원으로 상향한다. 1983년부터 유지돼온 청약통장의 월 납입금 인정 한도를 올리는 건 41년 만에 처음이다. 청약예금·부금·저축 가입자의 주택청약종합저축 전환을 1년간 한시적으로 허용한다. 청약 저축은 공공 주택 청약만 가능하고, 청약 예·부금은 민영 아파트 청약만 가능한데, 주택청약종합저축으로 전환하면 모든 주택 유형에 청약이 가능하다.
정부가 이처럼 청약통장 혜택을 늘리는 것은 청약저축 이탈자가 매년 늘고 있어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는 2545만722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2581만3885명) 대비 36만명이 줄었다. 이번 청약 제도 개편으로 해지 증가세에 제동이 걸릴지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청약통장을 보유한 젊은층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30대 직장인 송 모씨는 “청약통장 월 납입액을 25만원으로 올릴 생각은 없다”며 “실수요자들이 관심 가질만한 물량은 한정적인데 청약에 당첨 확률이 매우 낮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청약통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기대 없이 유지하는 수준이며, 급하게 돈이 필요할 경우 해지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가점제 중심의 청약 제도를 전면 개편하지 않는 한 청년층의 해지 움직임을 막기 힘들 것이라고 분석한다. 민간 분양 물량 대부분은 가점제로 공급되는데 무주택 기간, 부양 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 등에 따라 점수를 매겨 2030세대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젊은층이 선호하는 서울 아파트는 가점제 문턱이 높아 당첨 가능성이 희박한데다, 운 좋게 당첨된다 해도 천정부지로 치솟은 분양가를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하는 상황”며 “이제는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인 시대에 결혼 여부, 자녀 수, 부양 가족 등 따라 점수는 주는 가점제가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어 해지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도 “이번 청약제도 개편으로 금리가 0.3%포인트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예금 금리보다 낮아 청년책에게 유인책이 되기는 힘들 것”이라며 “기존 가점제로는 젊은층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청약하지 않는 한 당첨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연령이 높을수록 유리한 구조가 아니라 연령대별로 골고루 당첨될 수 있도록 청약 제도를 개편할 시점이 온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