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조 일반공모 유증 통해 2.3조 차입금 상환
주주환원 목적 공개매수 의미 퇴색
최윤범 회장, 베인캐피탈 3700억 인수금융 상환 의무는 '공유'
[헤럴드경제=심아란 기자] 고려아연이 일반 공모 유상증자로 경영권 방어에 나선 가운데 최윤범 회장 백기사인 베인캐피탈은 투자 리스크에서 비껴나 있다는 논란이 제기된다. 베인캐피탈은 고려아연 지분 1.4%를 공개매수로 확보하면서 3700억원의 인수금융을 일으켰는데 이때 대주단에 최 회장 측 지분 5%를 1순위 담보로 제공하며 상환 부담을 덜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최 회장이 베인캐피탈 채무 부담을 공유하는 구조다. 이런 가운데 최 회장은 2조3000억원에 달하는 차입금을 일으켜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한 뒤 돌연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 이의 포석 등에 대해 시장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30일 고려아연은 2조5009억원 규모의 일반 공모 방식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공모 물량의 20%는 우리사주조합에 우선배정한다는 목표다. 나머지는 '일반 공모'로 진행되는 만큼 최 회장을 비롯한 기존 주주가 유상증자 청약에 참여할지 미지수다.
이번에 조달한 자금 중 2조3000억원은 차입금 상환에 투입한다는 목표다. 이는 최 회장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위해 금융기관에서 고금리로 빌린 차입금이다. 주주환원을 위해 자사주를 거두더니 다른 주주 자금으로 차입금을 갚는다는 구상이다. 사실상 주주환원 의미는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 회장은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전체 주주의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목표는 MBK 측 지분 희석으로 보인다. 이번 유상증자가 계획대로 진행되면 MBK 측 지분율은 38.5%에서 32.6%로 조정된다. 반면 우리사주조합에서 100% 청약이 이뤄지고 여기에 최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산하면 현재 17%대 수준을 유지한다. LG, 한화, 현대차 등 사업 파트너에 분산된 지분을 최 회장과 합산할 경우 MBK 측을 넘어설 수도 있다.
신주의 주당 발행가는 67만원으로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직전 시가 대비 40% 이상 높게 책정됐다. 유상증자 소식이 전해진 이후 고려아연 주가는 하한가로 직행했다.
최 회장이 백기사로 초청한 베인캐피탈을 물심양면 지원하는 점을 감안하면 주주 원성을 살 수 있는 의사결정이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종료되기 2영업일 전인 21일 최 회장과 특관인 10인은 한국투자증권과 주식질권설정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베인캐피탈이 공개매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일으킨 차입금 3700억원에 대해 최 회장이 일종의 '담보의 담보'를 제공하는 절차였다.
질권이 설정된 지분에는 차주인 베인캐피탈이 소유한 1.4%와 최 회장과 특관인 몫 5%가 포함됐다. 베인캐피탈은 공개매수 이후 고려아연 주가 하락을 감안해 대주에 최 회장 측 지분까지 담보를 넉넉하게 제공한 모습이다. 최 회장이 베인캐피탈 채무에 대해 지급보증 성격으로 지분을 제공하면서 베인캐피탈은 차입금에 대한 담보유지비율 유지 의무도 따로 부과되지 않았다. 고려아연 시가를 감안한 인수금융 담보 가치는 1조4000억원대 수준이다.
앞서 MBK와 영풍 연합이 최 회장을 몰아낼 계획을 세우자 베인캐피탈은 크레딧 펀드를 동원해 최 회장 지원사격에 나섰다. 최 회장은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를 통해 유통주 17.5%를 거두고 베인캐피탈은 2.5% 지분 취득을 목표로 세웠다. 베인캐피탈은 선제적으로 투자 예정액 3700억원을 전량 한국투자증권에서 인수금융으로 마련했다.
이달 23일 공개매수는 종료된 가운데 최종적으로 고려아연은 9.85%의 자사주를 매수하고 베인캐피탈은 1.41% 지분을 취득했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에 투입한 금액은 1조8156억원, 베인캐피탈은 2592억원이다.
최 회장과 특관인 지분 5%는 베인캐피탈과 주주 간 계약으로도 묶여 있다. 해당 질권은 한국투자증권에 제공한 담보 대비 후순위지만 베인캐피탈의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점에서 최 회장의 상환 의무는 상당하다.
최 회장 측은 지분 5%를 지키려면 약속된 내부수익률(IRR)을 보장하며 약속된 시기에 베인캐피탈이 소유하는 1.4% 지분을 다시 매수해야 한다. 의무 이행이 불발되면 베인캐피탈은 최 회장 측 지분 5%를 처분할 권리를 가진다.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가 종료된 직후 베인캐피탈의 엑시트를 위한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된 상태다. 최 회장은 백기사의 엑시트 플랜도 요구되고 있다. 현재 MBK와 영풍 측은 고려아연 이사회에 임시 주총 소집을 요구하며 신임 이사진 14명 선임, 집행임원제 도입을 추진하며 최 회장을 압박 중이다.
이번 유상증자와 관련해 MBK는 "최윤범 회장은 고금리 차입금으로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진행해 고려아연에 재무적 피해를 입히고 그 재무적 피해를 이제는 국민의 돈으로 메우려 한다"라며 "기존 주주와 시장 질서를 유린하는 행위"라고 입장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