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안팎서 거센 반발…편집인 사퇴 선언

[美대선 D-9] ‘해리스 지지’ WP 사설 삭제한 베이조스 거센 비판 쏟아져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 [CNN 방송 화면 캡처]

[헤럴드경제=박세환 기자]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11월 5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영향력을 행사하다 거센 역풍을 맞았다.

베이조스는 자신이 소유한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입김을 행사해 그간 이어지던 전통을 깨고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지지 사설을 ‘킬(kill·삭제)’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앞서 WP의 편집인이자 CEO인 윌리엄 루이스는 25일(현지시간) 독자들에게 쓴 글을 통해 이번 대선부터 특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1976년 이후 1988년 대선을 제외하고는 모든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WP는 같은 날 별도 기사를 통해 기자 두 명이 해리스 후보 지지를 선언하는 사설 초안을 작성했으나 이를 게시하지 않았다면서 “그 결정은 사주인 아마존 창업자 베이조스가 내렸다”고 밝혔다.

루이스 CEO는 이에 성명을 내고 “WP 소유주와 대통령 지지 선언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둘러싼 보도는 부정확했다. 그(베이조스)는 초안을 받지도, 읽지도,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았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WP 안팎에서 베이조스의 결정을 비판하는 반응이 쇄도했다.

이 신문의 노조는 성명에서 “매우 중요한 선거를 불과 11일 앞두고 이런 결정을 한 데에 깊이 우려한다”며 이번 결정으로 “충성도 높은 독자들의 구독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

WP의 오피니언 필진 17명도 성명을 통해 이번 결정이 “끔찍한 실수”이며 “이 신문의 근본적인 편집 신념을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WP의 전 편집장인 마티 배런은 소셜미디어에 “민주주의를 희생양으로 삼은 비겁한 행동”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다만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베이조스 사업을 두고 “지속해서 위협해왔다”고 말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마라니스는 “47년간 일해온 신문사가 어둠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개탄했다. 정치학자이자 이 신문의 편집인(editor-at-large) 로버트 케이건은 편집인 자리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 신문에서 ‘워터게이트 특종’을 한 전설적인 언론인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도 성명을 내고 이번 결정이 “도널드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가하는 위협에 대해 워싱턴포스트가 전해온 압도적인 보도 증거를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내 대표적인 트럼프 비판자인 리즈 체니는 “베이조스가 해리스 지지를 철회한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라며 신문 구독을 취소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민주당 소속인 테드 리우 미국 연방하원의원, 수전 라이스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도 이번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