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사랑하는 이들 지켜줄 것이란 믿음 없어”
“참전 유공자에 대한 국가적 예우 수준 낮아”
전문가 “국가관에 대한 교육 필요, 군인 예우 수준도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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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김도윤 수습기자] 한국에서 전쟁이 발생할 경우 참전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국민이 20%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조사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북한은 최근 평양 상공에 무인기가 출몰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북한 젊은이 100만여명이 자발적으로 입대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고 알렸다. 한국의 전역한 젊은이들이 ‘전쟁 불참’을 선택하는 다수 이유는 국가에 대한 믿음 부족 때문이었다.
21일 헤럴드경제와 만난 공군 출신 예비군 2년차 정모(27) 씨는 참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말 뿐인 애국심은 이제 의미가 없다”며 “공군의 경우 전투기 하나를 띄우더라도 난이도가 높고 목숨을 건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데 결국 전쟁에서 쓰이고 마는 소모품이 되고 말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예비군 2년차인 류모(26) 씨는 “예전이었으면 공동체 의식도 있고, 국가를 위해 싸우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졌을지 모르지만, 최근에는 내가 나라를 위해 싸우면 나만 손해라는 인식이 생겼다”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무의미하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더 커서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다”고 답했다.
육군 출신 예비군 3년차 이모(28) 씨는 “군인을 공짜 노동력쯤으로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들 정도로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나 군대 다녀온 사람에 대한 대우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미국의 경우 군복 입고 있으면 시민들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등 영웅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데, 그런 지점이 부러웠다”고 털어놨다.
반대로 육군 출신 예비군 5년차 옥모(27) 씨는 “전쟁이 나면 도망 다닐 수도 없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참전이 불가피 할 것 같다”면서도 “군인에 대한 예우가 부족한 건 사실”이라며 “내 죽음이 헛되지 않고 내 가족들도 국가가 확실히 지켜준다는 명확한 국가의 대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의 이 같은 인식에 대해 공감한다면서도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국가관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과 함께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군인을 예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섭 원광대 군사학과 교수는 “국가가 나를 지켜줄 수 있고, 국가가 없어지면 나의 존재도 없다는 국가관이 무너진 것”이라며 “여·야, 보수·진보를 떠나 명확한 국가관을 심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지수 강릉영동대 디지털군사학과 교수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사람에게는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 방식으로 군인에 대한 예우를 높여야 하며, 지금까지는 이런 부분을 간과해왔다”고 지적했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국가보훈부와 국방부는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한 입장이나 향후 대응책을 국민에게 빠르게 제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지난 17일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방대학교로부터 제출받은 ‘2023년 범국민 안보의식 조사’ 결과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이라는 질문에 ‘전투에 참여하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13.9%에 그쳤다. 참전 의사 수준은 지난 2020년에는 20.9%, 2014년에는 22.7%였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일단 위험이 적은 곳으로 피난 가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27.3%, ‘외국으로 가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3.2%였다. 절반 정도인 48.2%는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지만 후방에서 군을 지원하겠다’고 답했다.
한편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6일 무인기 논란과 관련해 입대·복대 탄원서에 서명한 북한 청년이 140만 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평양 상공에서 포착된 무인기가 남한 군이 보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