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 다룬 한국영화들
남성에게도 점차 그렇게 돼가고 있지만, 현대사회에선 특히 여성에게 미모가 자본이다. 여성에게 매력자본의 열쇠는 미모다. 그래서 성형은 성공이라는 이름의 종착역에 도달하기 위한 욕망의 열차가 된다. 남성에겐 미녀가 욕망의 대상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남성에게 미녀는 성공의 증거이자 결과다. 미녀가 되고 싶은 여성과 미녀를 소유하고픈 남성 간의 거래 결과는 성형을 현대사회의 거대한 산업으로 만들어냈다.
영화는 현대사회에서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는 욕망으로서 성형을 그려왔다. 그 결과 영화 속에서 성형은 흔히 부정적으로 묘사됐다. 얼굴에 칼을 대서라도 미모를 얻고, 그것을 성공의 사다리로 삼으려는 여성들은 흔히 저주와 징벌의 대상이 돼 왔다. 미녀를 소유하고픈 남성의 욕망은 위선적이고 추악한 것으로 그려졌다.
한국영화에선 2000년대 중반부터 성형이 영화의 메뉴가 됐다. 특히 공포영화에서 두드러졌다. 성형을 위해 손발이 묶인 채 수술대에 오르는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신데렐라’와, 혼을 팔아서라도 예뻐지고 싶었던 여인들의 이야기 ‘요가학원’이 대표적이다.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내면’이라는 마음에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남자들의 이중성은 ‘미녀는 괴로워’에서 유쾌하게 풍자된다. 노래를 잘 불러야 가수가 아니라 얼굴이 예뻐야 가수다. 착해야 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외모다. ‘착한 얼굴=예쁜 얼굴’이라는 이상한 등식을 상식으로 만든 사회의 이중성이 ‘미녀는 괴로워’가 자아내는 웃음의 원천이다.
성형으로 인한 정체성의 혼돈은 김기덕 감독의 ‘시간’의 주제다. 오래된 연애와 연인에 싫증난 남자가 있다.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여인은 남자 몰래 성형수술을 감행해 신분을 숨기고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실을 알 리 없는 남자에게 여인의 ‘비포’와 ‘애프터’는 서로 다른 사람이다. 남자는 옛 사랑과 새로운 여인 사이에서 갈등한다. 여인은 남자의 마음을 두고 성형 전의 자신과 ‘연적’이 된다. 김기덕 감독은 남녀 주인공이 빠진 정체성의 혼돈을 일종의 게임으로 표현한다. 가면놀이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권태에 빠진 연인들에게 성형이란 뜨거웠던 관계를 화석화시키는 ‘시간’에 맞서 사랑을 영구 보존하고자 하는 극약처방이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주름잡히는 피부와 퇴색해가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주사를 맞고 메스를 받아들인다. 스페인 영화 ‘내가 사는 피부’의 남자 주인공은 교통사고로 인한 화상으로 아내를 잃고, 완벽한 인공피부를 만드는 불법 실험에 집착한다. 실험실의 흰 쥐가 돼버린 여인들의 희생을 먹고 새하얀 인공피부가 한땀 한땀 완성돼 간다.
미모가 선이고 자본인 사회에서 박색은 악이고 채무다. 미국 영화 ‘쟈니 핸섬’과 스페인 영화 ‘어글리 우먼’은 추악한 얼굴로 태어나 범죄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저주받은 인생들을 통해 현대사회를 풍자한 작품들이다.
이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