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 3분기 순이익 14조원 육박
‘슈퍼 을’ ASML, 내년 실적 하향 조정
AI로 주요 반도체 기업 명암 극명
‘승자독식’ 구조에 실적 양극화 심화
[헤럴드경제=김민지·김현일 기자] 주요 반도체 관련 기업들의 실적이 엇갈리며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슈퍼 乙(을)로 꼽히는 네덜란드 장비 기업 ASML은 시장 전망치를 하회하는 실적에 한때 주가가 16% 이상 떨어지기도 했다. 반면,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는 하반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가운데 내년 전망도 밝게 점쳐진다. 일각에서 제기된 ‘반도체 겨울론’이 AI 경쟁력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모습이다.
TSMC-ASML, 두 대장주 극심한 온도차
TSMC는 17일(현지시간) 올 3분기 순이익 101억달러(약13조8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4.2% 급증한 수치다.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한 235억달러였다. 이는 회사의 이전 이전 예상치인 224억~232억 달러를 웃돌았다.
7나노 이하의 첨단 공정 기술이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했다. TSMC에 따르면, 3나노 출하량은 전체 웨이퍼 매출의 20%, 5나노는 32%, 7나노는 17%를 차지했다.
깜짝 실적의 효과로 시가총액이 사상 최초로 1조 달러를 넘어섰다. 이날 미국 증시에서 하루만에 주가가 9.79% 폭등해 205.84달러를 기록했다. 엔비디아에 이어 두 번째로 시총 1조달러를 돌파한 반도체 기업이 됐다. 이날 기준 TSMC는 세계 기업 중 시총 8위를 기록하고 있다.
반면, 첨단 공정 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는 ASML은 전날 부진한 실적 전망을 발표하면서 주가가 16% 급락했다. 3분기 매출은 74억7000만유로(11조1100억원), 영업이익은 24억4000만유로(약 3조6300억원)로 시장 예상치를 소폭 상회했지만 신규 수주금액이 예상보다 저조한 데다 내년 실적 기대치마저 꺾인 것이 발목을 잡았다.
ASML에 따르면 3분기 신규 수주금액은 26억3000만 유로로, 시장 예상치였던 53억9000만 유로를 무려 51%나 하회했다. 삼성전자와 인텔 등 주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고객사의 투자가 지연되고 있는 점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실제로 ASML의 신규 수주금액 중 로직(파운드리) 비중은 지난 2분기 73%에서 3분기 46%로 급감했다. 여기에 PC와 스마트폰 등 IT 기기의 수요 회복도 여전히 더뎌 고객사들이 반도체 제조장비 구매에 보수적인 기조를 보이면서 ASML의 실적 쇼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부정적인 환경 탓에 ASML은 2025년 예상 실적도 낮췄다. ASML이 이번에 새롭게 제시한 2025년 예상 매출액은 300억~350억유로, 매출총이익률은 51~53%다. 지난 2022년 투자자의 날에 제시했던 매출액 300억~400억유로, 매출총이익률 54~56%보다 하향 조정했다.
AI가 가른 ‘명암’…잘 나가는 1등만 ‘승자독식’ 심화
반도체 업체들의 명암을 가른 건 ‘AI’다. 엔비디아, TSMC, SK하이닉스 등은 AI 반도체 시장에서 각각 1등 플레이어로 꼽힌다. 이들에 수요가 대거 몰리며 승자독식 형태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가속기인 블랙웰 제품은 아직 출시 전인데도 불구하고 내년 물량까지 매진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마존웹서비스(AWS)와 구글, 메타, 마이크로소프트(MS), 오라클 등 여러 빅테크들은 향후 1년간 엔비디아가 TSMC를 통해 생산할 수 있는 모든 블랙웰을 사전 주문한 상황이다.
이처럼 TSMC는 파운드리 시장에서 주요 빅테크의 AI 반도체 제조 주문을 싹쓸이 하고 있다. 공장 가동 속도가 밀려드는 주문량을 못 따라갈 정도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분기 전세계 파운드리 시장에서 TSMC는 62.3%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2위 삼성(11.5%) 보다 무려 50%포인트 이상 많은 수준이다.
삼성, 인텔이 적자를 기록하며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것과 대조된다. 실제로 AI 반도체의 경우 5나노 이하의 초미세 공정 기반이 상당수인데, 고객사 확보와 수율 개선에 난항을 겪고 있다. 저조한 주문량에 삼성전자와 인텔은 신규 공장 투자를 보류하고 가동 시점을 연기하는 등 투자 속도까지 조절하고 있다.
메모리에서는 SK하이닉스가 AI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성장으로 삼성전자와 대조되는 분위기다. 오는 24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데, 최근 증권사들은 전망치를 높이며 긍정적인 낙관론을 내놓고 있다. SK하이닉스 3분기 매출액 추정치는 18~19조원, 영업이익은 6조9000억~7조원으로 집계된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 DS부문의 영업이익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한다.
SK하이닉스에 장비를 납품하고 있는 장비, 부품 업체들의 수혜도 눈에 띈다. 한미반도체는 17일 올 3분기 연결기준 매출 2085억원, 영업이익은 993억원을 올리며 창사 이래 최대 분기 실적을 달성했다고 밝혀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68.4%, 영업이익은 무려 3320.9% 증가한 수치다. 한미반도체는 HBM 제작에 필수적인 장비 TC 본더를 납품하고 있다.
반면, AI 관련 제품에 부진을 겪고 있는 기업들은 뚜렷하게 침체된 분위기가 감지된다. 삼성전자는 오는 31일 확정실적을 발표하는데, DS부문의 3분기 매출 영업이익은 5조3000억원 정도로 예상된다.
HBM을 포함한 AI 메모리에서의 경쟁력 하락이 치명적이다. 삼성전자는 올 초부터 HBM3E 제품의 엔비디아 납품을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SK하이닉스는 8단에 이어 12단 제품 납품까지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내년 전체 D램 시장에서 매출 기준 HBM 비중은 올해 21%에서 내년 30%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HBM의 존재감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삼성전자에게는 엔비디아 납품이 절실하다.
반면, HBM을 제외한 범용 제품은 스마트폰, PC 등 IT 기기 수요 부진으로 침체돼있다. 트렌드포스는 최근 “범용 D램 가격은 0~5% 상승에 그칠 것이며 낸드 가격은 3~8%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범용 D램이 매출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4분기 실적에 악영향을 끼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