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합판을 제조·판매하는 업체의 경영진이 해외에서 원목을 수입하면서 자신이 만든 페이퍼컴퍼니를 사이에 끼워 45억원 가량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 받았다. 법원은 사장의 범죄가 횡령은 물론 가격조작에도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8부(부장 김재호)는 지난 5월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상 횡령, 재산국외도피 및 대외무역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사장 A씨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A씨는 합판 제조·판매업을 하는 B사의 부사장이었다. 검찰은 A씨가 10년 동안 해외에 페이퍼컴퍼니 C사를 세워 해외 원목업체→C사→B사로 이어지는 거래 구조를 만들고, B사가 C사에게 무역중계 명목으로 수수료를 지급하도록 했다며 지난해 1월 기소했다. 검찰은 A씨의 행위가 대외무역법, 관세법이 금지하는 가격조작에도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측은 B사는 실제 중계업무를 수행한 곳으로 페이퍼컴퍼니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가격조작 혐의도 부인했다. 가격조작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거짓 신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외 원목업체와 C사, C사와 B사가 각각 따로 계약을 체결하고 이에 따라 수입대금을 지불·신고 했기 때문에 거짓신고라고는 볼 수 없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는 A씨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2심 재판부는 C사가 페이퍼컴퍼니가 맞다고 판단했다.
해외 원목업체와 실제 계약 내용을 정한 것이 B사라는 점에 주목했다. 중계무역 업무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낀 C사가 원목 수·출입 계약 과정에 개입해야 한다. 하지만 C사는 원목수출업체와 B사가 협의한 내용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B사는 C사로부터 협의 가격에 일정 금액을 더해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2심 재판부는 “B사는 원목 수출업체와 수입 원목의 가격, 물량 등에 관한 협의 내지 협상을 마쳤다. C사가 실질적인 중계업무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수긍할 수 있다”며 “피고인은 자신이 C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사실을 숨긴 채 중계무역을 한 것처럼 가장해 이익을 얻게 했다”고 했다.
A씨의 행위가 가격 조작에 해당한다고도 판단했다. 계약 자체가 범행 수단이기 때문에 계약의 자유를 이유로 신고 금원이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C사를 거래 중간에 끼워넣은 목적, 방법, 내용, 결과 등을 종합하면 가격 조작으로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며 “가격조작죄를 신설한 배경은 수입대금 차액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피고인은 원목 수입 거래 과정에서 자신이 B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지위를 이용해 10년 이상 기간 동안 자신이 몰래 소유하는 B사를 거래 중간에 끼워넣어 수입가격을 부풀려 미화 약 400만 달러를 국외로 도피 및 횡령했다”며 “직원을 교사해 증거를 인멸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 피고인의 범행은 회사의 재정 상황이나 신뢰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직원 및 주주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