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부산)=이정아 기자] “시대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놀랍고 영광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역사상 처음으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인 넷플릭스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된 데 대해 배우 강동원이 2일 이같은 소감을 밝혔다. 실제로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영화제 측의 전략으로 올해 행사에는 OTT 콘텐츠가 대거 약진했다. 특히 영화제의 얼굴 격인 개막작이 넷플릭스 작품 ‘전, 란’이라는 점은 역대 행사 중 가장 파격적이다.
이날 막을 올린 영화 ‘전,란’은 박찬욱 감독이 제작과 시나리오 공동집필로 참여했으며 김상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연출을 맡았다. 영화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조선 최고 무신 집안의 아들인 종려(박정민 분)와 그의 몸종인 천영(강동원 분)이 전쟁을 겪은 뒤, 선조의 최측근 무관과 의병으로 적이 돼 서로 칼끝을 겨누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공감을 촉매로 하는 서사의 몰입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작품성과 박진감을 모두 놓치지 않기 위한 연출과 편집이 돋보인다. 역대 개막작 가운데 ‘사회 계급 시스템의 모순’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소재로 전개되는 영화라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데뷔 이후 처음으로 노비 역을 연기한 강동원은 이날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문화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유로워서 좋았다”며 미소 지어 보였다. 그는 “양반 역할을 하면 제약들이 있다. 말도 조심해서 해야 하고 감정표현도 절제해야 하는 등 기품을 유지해야 했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자유로울 수 있어 감정 표현도 풍부하게, 기존에 했던 다른 역할과 다르게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서 영화 ‘군도’(2014)에서 연기한 부패한 양반 역을 맡아 연기한 바 있다.
이날 김 감독은 촬영 당시 제작자인 박찬욱 감독의 집요한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도 전했다. 김 감독은 “박 감독의 에너지가 존경스러웠다”며 “미국 드라마 ‘동조자’ 촬영 기간이었는데도 새벽에 일어나서 시나리오를 일일이 보고 조언해줬다”며 “촬영 현장에서도 대사 한마디 한마디 섬세하게 디렉팅을 했다”고 말했다. 영화는 박 감독이 대표로 있는 모호필름이 세미콜론 스튜디오와 공동 제작한 작품이다. 김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미술감독을 맡으며 박 감 독을 처음 만났다. 이후 ‘친절한 금자씨’(2005),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에서는 광고 디자인을 맡아 인연을 이어왔다.
영화 ‘전,란’이 개막작으로 선정된 데 대해 영화계에서는 영화제가 갈수록 쏠림 현상이 심해지는 OTT의 영향력을 수용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달 11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 일각에서는 영화제의 취지를 살려 극장용 영화에 무게추를 더 뒀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에 박도신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직무대행은 “그동안 개막작으로 주로 독립영화를 상영했지만, 대중성을 생각한다면 그 영화가 OTT라도 개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최근 영화계가 어렵다고 하는데 시대마다 그 고비가 있었다. 오만한 말이지만, 영화는 계속 생명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어 “스크린 사이즈가 과연 문제인지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며 “영화라는 것이 극장의 상영 조건에 반드시 일치해야 영화인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영화제는 63개국 279편의 영화가 영화의전당, CGV 센텀시티,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영화진흥위원회 표준시사실, 메가박스 부산극장 등 총 5개 극장 26개 스크린에서 상영된다. 개막작을 비롯해 아시아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 등 부문까지 OTT 플랫폼의 굵직한 콘텐츠 9편이 곳곳에 포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