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관해 가장 많이 읽힌다는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는 일찍이 전쟁을 ‘상대의 모든 능력을 절멸시키려는 절대전쟁과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현실전쟁’으로 나눈 바 있다.
현재 3년째 계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종결을 놓고서 절대전쟁과 현실전쟁 사이 갈림길에 서 있는 듯하다. 우크라이나군은 지난 8월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지역 공세를 단행했다. 이를 통해 승리를 확신하던 러시아에 큰 충격을 안겼고, 종전 협상에서 잃었던 영토회복의 교환카드로 활용할 상대방 영토를 확보하는 데에 힘쓰고 있다. 우크라이나 관점에서의 상대방 능력 절멸을 의미하는 절대전쟁 방식 대신 현실전쟁 방식의 전쟁 종결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영토침범은 러시아 국가안보전략에 의하면 핵무기 사용조건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러시아 고위급 인사들의 핵전쟁 언급이 다시 등장했듯이 이번 쿠르스크 공세는 핵무기라는 절멸무기 사용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미사일과 드론을 사용한 전략폭격을 계속하고 있다. 2022년 가을 이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전력공급 인프라를 집중 폭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연합은 다가오는 겨울에 우크라이나가 맞을 심각한 전기공급 부족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이 같은 러시아의 전략폭격은 전력공급 체계 마비를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의 전쟁 수행의지를 급감시켜 전쟁을 종결하려는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도 절대전쟁 방식으로 상대방 능력 절멸을 대신하는 현실전쟁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과거 역사에서도 유사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육군항공대에서 ‘폭격기 마피아’라고도 불리운 고위 지휘관들은 국가산업의 핵심 노드를 정교하게 파괴해 전쟁 수행능력을 급감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전쟁 종결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미국의 전략폭격은 독일 볼베어링 생산공장 등 산업 병목지대와 석유 정제시설 등 국가경제의 핵심 노드 파괴에 집중됐다. 그러나 전후 분석은 폭격기 마피아들의 예측과 달리 독일의 전시경제 돌입이 늦어짐에 따라 산업 병목지대 폭격의 효과는 없었음이 드러났다.
또한 독일 경제의 핵심은 석유 정제시설보다는 합성석유를 만드는 화학회사들이었으며, 석유보다는 석탄과 철도에 더 의존했다는 것도 전쟁이 끝나고서야 분석됐다. 이렇듯 폭격기 마피아들의 전쟁 종결 접근은 효과적이지 못했는데 그래서인지 독일에 뒤이은 일본을 향한 전략폭격에서는 절멸무기인 핵무기 사용까지 이어졌다는 평가다.
이 같은 사례처럼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재래식 전략폭격이 효과없이 장기화된다면 러시아의 핵 사용 결심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20세기 전쟁에서 효과적인 전쟁 종결방법을 찾다가 결국 핵무기 사용까지 이어진 경험이 오늘날 재연된다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종결 접근이 절멸무기 사용으로 귀결되는 것을 방지하고, 1945년 이후 핵무기 사용을 자제해온 역사를 이어가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효과적인 전쟁 종결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숙명여대 석좌교수·전 공군대학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