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방해 등 혐의

1·2심 모두 유죄…징역 1년 실형

대법 “업무방해 유죄 판단은 잘못”

유령법인 정상처럼 속여 계좌 개설…대법 “은행 심사 부실했다면 업무방해 아냐”
대법원. [헤럴드경제DB]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실체가 없는 유령법인을 정상 운영할 것처럼 속여 대포통장을 개설했더라도, 은행 직원이 부실하게 심사했다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불충분한 심사가 원인이었다고 볼 여지가 많으므로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다는 취지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신숙희)는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업무방해, 횡령 등 혐의를 받은 A씨에 대해 이같이 판시했다. 앞서 원심(2심)은 3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지만 대법원은 “업무방해까지 유죄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22년 5월께 광주 서구의 광주새마을금고 본점에서 그가 설립한 법인 명의로 계좌를 개설했다. 해당 법인은 유령법인이었다. A씨는 이를 숨기고 계좌를 개설해 통장, 체크카드 등을 제3자에게 양도하고 대가를 지급받기로 했다.

당시 그는 은행 측에 사업자등록증, 법인인감증명서 등을 제출하고 계좌를 발급받았다. 은행 측은 금융거래 목적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하거나, 확인하지 않았다.

1심과 2심은 A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징역 1년 실형이었다. 대포통장을 타인에게 대여해줬으므로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은행 측의 업무를 방해했으므로 업무방해죄, 대포통장에 있던 돈을 횡령한 혐의 등 3개 혐의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김길호 판사는 지난 2월, A씨에게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실제 운영되지 않는 법인을 마치 정상적인 법인인 것처럼 금융기관을 속여 계좌개설 업무를 방해했다”며 “해당 계좌가 범죄에 이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엄중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업무상횡령죄 등으로 누범기간 중에 있었음에도 재범에 이르렀고, 이미 실형 2회, 징역형의 집행유예 1회, 벌금형 6회 등 처벌 전과가 있다”고 양형의 배경을 설명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8-3형사부(부장 최진숙)도 지난 5월,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읜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2심)이 업무방해죄까지 유죄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A씨가 작성한 계좌개설신청서, 제출한 서류 등은 계좌 개설 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서류들로 보일 뿐 계좌 명의자인 회사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등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 부분과 관련해 은행 측에서 추가로 자료를 요구하는 등 적절한 심사절차를 진행했음에도 A씨가 허위 서류를 작성하거나 위조된 문서를 제출하는 등 특별한 사정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결국 대포통장이 개설된 것은 은행 측의 불충분한 심사에 원인이 있다고 볼 여지가 많으므로 A씨가 업무방해의 위험성을 발생시켰다고 할 수 없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은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며 2심 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A씨는 4번째 재판에서 다소 감형받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