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형집행법 제82조 “재판 출석 시 사복 착용 가능해”

법조계 “기업인·정치인 중심으로 정장 착용 많다고 느껴”

첫 재판서 ‘정장’ 입고 나온 김범수…‘무죄 의지’ 피력일까[취재메타]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의혹을 받고있는 김범수(가운데)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이 지난 7월 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남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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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된 카카오 창업주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지난 11일 첫 재판에서 수의(囚衣)가 아닌 ‘검은색 정장’을 입은 채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형이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이 사복을 입고 출석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다만 일각에선 이번 사건이 비슷한 전례가 없는 사건인 만큼 기업 총수로서 혐의가 없음을 피력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5부(양환승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오후 2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 위원장과 불구속 기소된 홍은택 전 카카오 대표, 김성수 전 카카오엔터 대표, 강호중 카카오 투자전략실장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정식 공판에는 피고인의 출석 의무가 있기 때문에 김 위원장도 다른 피고인들과 함께 법정에 출석했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서울남부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 위원장은 이날 재판에서 구속 피고인들이 통상 입는 ‘수의’가 아닌 ‘검은색 노타이 정장’ 차림으로 출석해 눈길을 끌었다.

물론 미결수용자 신분인 김 위원장은 재판에 출석할 때 수의나 사복 중 자유롭게 선택해 입을 수 있다.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82조에도 ‘미결수용자는 수사·재판·국정감사 또는 법률로 정하는 조사에 참석할 때에는 사복을 착용할 수 있다. 다만, 소장은 도주우려가 크거나 특히 부적당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면 교정시설에서 지급하는 의류를 입게 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구속 피고인이 정장 차림으로 재판에 출석한 사례는 정·재계, 법조계 인사를 중심으로 이전에도 늘 있었다. 국정농단 재판 당시에는 구속 수감 중인 피고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관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이 정장과 같은 사복을 입고 재판에 출석했다.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으로 구속 기소된 박영수 전 특별검사 또한 지난해 10월 열린 첫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수의가 아닌 정장을 입고 피고인으로 출석했다.

재경지법 부장판사로 재직하며 다수의 형사 사건을 맡아 온 한 로펌 변호사는 “현행법상 사복 착용은 피고인에게 재량이 인정되는 부분이어서 이례적이거나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기업 회장이나 임원들, 정치인들은 본인들의 혐의를 다투는 형사 재판에 나올 때 수의가 아닌 양복으로 갈아입고 오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 측은 첫 재판에서 이번 SM엔터 시세조종 의혹 사건이 전례가 없는 일임을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지분 경쟁 상황에서 장내매수를 통해 지분을 확보하는 건 지극히 합법적인 경영상 의사 결정”이라며 “검찰의 공소사실에는 김 위원장이 구체적으로 언제 누구에게 무슨 지시를 했는지 등에 관한 내용 자체가 없어 막연한 추측에 근거한 ‘무리한 기소’라는 게 본질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하이브의 적대적 인수합병(M&A)를 막기 위한 정상적 경영 필요에 따라 이뤄진 매수라며 인위적 시세조종 행위라 볼 수 없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대법원 판례는 자본시장법 제176조 제3항 위반에 해당하기 위해선 정상적 수요공급에 따라 시장에서 형성된 시세에 인위적 조작을 가하거나 이를 고정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다”며 “공소사실이 성립되기 위해선 객관적으로도 일련의 시세조종 행위에 해당해야 하고 인위적 조작의 고의가 있어야 하지만, 당초 SM엔터 인수에 부정적이었던 김 위원장에게는 이에 대한 공모나 인식이 전혀 없었다”고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그러면서 “여러 로펌의 자문을 받은 결과 장내매수에 대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겠다는 설명을 들은 상황에서 이에 관여하지도 않은 김 위원장 에게 인위적 주가 부양의 고의가 있다고 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검찰측 주장을 반박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원아시아펀드가 SM엔터 주식을 매입한 사실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원아시아펀드의 주식매수와 관련해 공모는 물론이고 그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다”며 “카카오와 카카오엔터, 원아시아펀드 등이 SM엔터 주식을 공동 보유한다는 인식도 전혀 없어 주식 대량보유상황 보고(5%룰) 의무도 위반한 사실이 없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제반 사정을 고려해 기업 간 지분경쟁 상황에서 정상적 경영활동 일환으로 이뤄진 장내매수를 시세조종이라 할 수 있는지, 김 위원장에게 인위적 주가조작의 고의가 있다거나 공모했다고 볼 수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16~17일과 27~28일 경쟁사인 하이브의 주식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해 SM엔터 주가를 공개매수가 12만원보다 높게 고정시키는 방식으로 약 2400억원 규모의 SM엔터 주식을 총 553회에 걸쳐 시세조종 매집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사모펀드 운용사 원아시아파트너스 지창배 회장 등과 공모해 2월 16~17일과 27일 등 모두 3일간 총 363회에 걸쳐 원아시아파트너스 명의로 장내에서 약 1100억원 규모의 SM엔터 주식을 고가매수하거나 물량소진 주문 등을 통해 시세조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같은 달 28일에도 김 위원장이 홍 전 카카오 대표, 김 전 카카오엔터 대표 등과 함께 카카오와 카카오엔터 명의로 총 190회에 걸쳐 약 1300억원 규모의 SM엔터 주식을 사들여 시세조종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16일부터 28일까지 확보한 SM엔터 지분이 합계 8.16%로 주식 대량보유상황 보고(5%룰) 의무가 있음에도 원아시아파트너스 보유 지분을 숨긴 채 보고하지 않은 혐의도 받는다.

재판부는 다음달 16일 오후 2시 공판준비기일을 열고 증거 및 양측의 사건 관련 쟁점을 정리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