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무도실무관’서 인생캐 만나
가정교육 잘 받은 밝은 청년 설정
‘열린 마음’ 감독님 덕 캐릭터 구축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추석 연휴 내내 시청자들이 우리 영화를 어떻게 보고있나 찾아봤는데, ‘영화관에 걸렸어도 돈 주고 봤겠다’는 평가를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무도실무관과 보호관찰관이란 직업과 그 분들의 노고가 널리 알려진 것 같아 기뻐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무도실무관’에서 주인공 ‘이정도’를 연기한 배우 김우빈은 지난 1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에 대한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화색을 보였다. 영화 ‘무도실무관’은 공개한 지 사흘 만에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에 등극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보였다.
‘이정도’라는 역할에 김우빈 외의 배우는 생각나지 않는다는 평이 많다. 김주환 감독 역시 지난 10일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이 역할을 김우빈에게만 섭외 의뢰를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우빈은 “감독님이 생각했던 정도 역할이 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정도의 전체적인 이미지는 김 감독의 머릿속에 있었지만, 이 청년의 호감가는 인상과 친근한 행동 등 디테일은 사실상 김우빈이 빚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촬영 중 조금이라도 아쉬운 점이 생기면 재촬영을 요청할 정도로 캐릭터에 대한 애착이 컸다.
“극 후반부 범죄자가 방검복을 입은 나를 칼로 찌르려다가 당황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극 초반 운동 장면에서 내가 상대 선수한테 ‘메롱’하는 장면이 이 신(scene)에서도 재현됐으면 했죠. 근데 이날 촬영에선 못하고 지나갔어요. 후에 감독님께 ‘저 사실 그날 메롱을 하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했더니 왜 진작 말 안했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메롱 장면을) CG(컴퓨터그래픽)로 입히려고 얼굴만 다시 찍었어요.(웃음)”
정도가 ‘성장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두 장면에서다. 처음 성범죄자를 검거할 때는 ‘...불리하고’, ‘...할 수 있다’며 띄엄띄엄 흉내만 내지만, 마지막 빌런 강기중(이현걸 분)을 검거할 때는 미란다 원칙을 또박또박 말한다.
김우빈은 “원래 시나리오에는 강기중 검거 때 미란다 원칙 고지가 없었다. 근데 제가 손목에 커닝페이퍼를 써놓고 읊으면 어떠냐고 제안했다”며 “아무리 상황이 진지하다 해도 캐릭터의 발랄함을 유지하면서도 성장의 마침표 역시 찍어주고 싶어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정도의 외모도 그가 계산한대로 만들어졌다. 김우빈은 “처음부터 8㎏정도 증량하겠다고 했다. 누가 봐도 체격이 있다 싶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며 “중간 이후부터는 무도실무관의 업무가 고되고, 생활 리듬이 변하니까 체중을 차차 빼겠다고 했다. 다 계획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함께 동고동락하는 친구 3명과도 머리를 맞대고 관계성을 설정했다고 밝혔다.
“친구들 하고 모여서 ‘우리는 몇 살이고, 학교 어디서부터 친구야’라는 식으로 서사를 만들었어요. 다른 작품에서도 인물의 전사(前史) 구축하는 편인데, 이번 작품에선 좀 더 의견을 적극적으로 냈죠. 감독님이 반영해주셔야 제가 의견을 낼 수 있는데, 마음 열고 받아주셔서 가능했어요.”
하지만 그가 끝까지 고심하다 정하지 못한 설정도 있다. 바로 오프닝에서 보여진 정도의 방 장식장 안의 ‘뉴진스’ 민지의 브로마이드다. 김우빈은 “감독님이 정도가 뉴진스 팬이라고, 멤버 중에 누가 제일 좋냐고 물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못 고르겠더라”며 “결국 그 인서트는 따로 찍었는데, 민지씨 사진으로 들어가 있는 걸 저도 나중에 확인했다”고 웃었다.
사실 이정도의 성품은 일종의 반전처럼 보인다. 노란 탈색머리에 큰 덩치, 백수로 아버지 치킨집에서 배달을 하는 정도는 왠지 비행 청소년의 ‘클리셰(진부한 설정)’인 듯 하다. 하지만 영화를 찬찬히 보다보면 정도는 단순하고 꼬인 것 없는, 심지어 해맑기까지 한 청년이다. 함께 어울리는 순하고 재밌는 친구들까지 합치면 ‘이런 유니콘이 있다고?’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저는 정도가 겉모습과는 다르게 좀 철이 든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겉모습과 달리) 행동거지에선 ‘날티’가 안나고, 좋은 가정교육을 받은 친구로 보이길 원했어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로 키운 아버지를 욕먹여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태권도·유도에게서 배운 예의를 바탕으로 겸손하고 당당한 태도로 살아가는 친구를 보여주고 싶었죠.”
함께 연기한 배우 김성균과의 찰떡 호흡은 제작발표회 때부터 수 차례 밝혀왔던 바다. 김우빈은 “제가 성균형의 아바타처럼 말을 전하면서 범법자를 진정시키는 장면이 있다”며 “그날 실제로 형이 카메라 뒤에 서서 대사를 했고, 그걸 들으면서 내 대사를 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실감나는 액션신에는 그의 ‘액션 철학’과 상대 배우의 피지컬이 한 몫했다. 김우빈은 “액션신을 찍을 때 어디가 크게 부러지지 않는 이상 다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대가 늘어나는 정도는 다친 게 아니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임했다”며 몸을 아끼지 않는 액션신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아울러 강기중 역의 이현걸 배우가 체중이 110㎏에 육박했는데, 이 역시 연기 몰입에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키는 나랑 비슷한데, 배역을 위해 체중을 20㎏ 찌웠다고 하더라. 실제로 보면 문짝남을 넘어서서 냉장고 같은 느낌이라 내가 밀어도 안 넘어졌다”며 “(상대 배우의)에너지를 느끼면서 촬영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1년 배우로 데뷔한 후 벌써 13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김우빈. 이제는 N회차 재회하는 배우와 작가, 감독이 늘어나고 있다며 웃었다.
“지금 찍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다 이루어질지니’가 그래요. 배수지 배우도 그렇고 예전에 같이 일해본 사람들과 여럿 재회한 작품이에요. 서로 예전 기억이 안 좋았으면 다시 만날 수 없거든요. 감사한 일이에요. 좋아하는 일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내일 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