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유럽 박물관은 덥다

처서와 백로가 지났음에도 무더위는 여전하다. 국립항공박물관은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과학기술박물관위원회(CIMUSET) 회원관의 일원으로서 올해 오스트리아 비엔나 과학기술박물관에서 열린 연례 국제학술대회에 다녀왔다.

우리는 이번 대회에서 ‘세계 항공박물관 네트워크(Network for Aviation Museums)’ 구성을 제안하는 세미나를 개최했고, 향후 4년간 세계의 항공박물관들을 순회하면서 경영 노하우와 당면 과제, 학예 부문의 전문성을 향상하는 방법들을 논의하는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이를테면 항공박물관마다 공중에 매달린 형태의 전시 항공기의 안전성 확보는 어떻게 진단하는지, 야외에 전시된 대형항공기의 도장(塗裝) 작업은 역사적 보존과 과학적 환경 사이에서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하는지 등 공통의 관심사를 도출하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나누고자 하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비엔나 과학기술박물관은 1918년 개관하여 자연, 지식, 중공업, 일상생활, 통신, 교통 등 근현대 과학 기술을 전시하고 있다. 우리 박물관은 오는 10월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l, 1848~1896) 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으로, 현전하는 그의 글라이더 다섯 대 중 한 대를 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어서 더욱 관심이 갔다.

먼 곳에서 온 박물관장이라고 환대받으며 항공 담당 큐레이터의 해설을 듣는 기회가 있었다. 40대 중반의 큐레이터는 짧은 스포츠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은 조깅 복장으로 나타났다. ‘자유로운 복장으로 근무하니 창의성이 저절로 넘치겠다’는 첫인사를 건네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관장님 좀 전에 제가 일하던 사무실은 섭씨 32도였고, 이 전시실은 30도쯤 될 겁니다’라고 답했다. 학술대회가 열린 강당을 빼고는 에어컨이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뮌헨에 있는 독일박물관도 방문했다. 유물 총괄 책임자와 큐레이터의 배려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전시실을 비롯해 보존과학실, 3D 스캐너실 등 다른 박물관의 속살을 살펴보는 귀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1903년에 개관한 독일박물관은 세계 최대규모의 과학 박물관으로 50여 개의 전시실을 갖춘 독일의 자존심이다. 반지하층에 있는 보존과학실에는 네 명의 큐레이터가 실제 항공기에서 추출한 표본을 준비해 놓고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현미경과 성분분석기 같은 기기들이 작은 연구실을 채우고 있었는데, 역시나 여기에도 에어컨은 없었다. 박물관 종사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수장고의 온도 20도, 습도 50~55퍼센트 내외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런던의 영국 왕립공군박물관의 ‘스핏파이어 전투기’, 영국박물관의 ‘로제타스톤’, 내셔널갤러리의 ‘아델린 라부의 초상’ 앞은 여전히 관람객들로 붐볐지만, 냉방시설은 극히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그래서 여름 폭염철 유럽 박물관 관람은 ‘비추’다. 하지만 기존의 기후환경과 오래된 건축물이 지닌 제한들, 유럽 사람들 특유의 문화와 환경에 대한 태도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출장이었다. ESG 경영과 탄소 중립을 위한 ‘공공부문 온실가스 목표관리 운영 등에 관한 지침’을 다시 살펴보며, 박물관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 본다.

안태현 국립항공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