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故 최종현 SK 선대회장 26주기
최태원 등 가족들만 모여 ‘조용한 추모’
경영전략회의·이천포럼서 SKMS 강조
위기 때마다 재조명…SK그룹 근간 정신
1·2차 석유파동 뚫고 유공 인수 성공 뚝심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SK그룹이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의 26주기를 맞아 고인이 정립한 SK만의 경영관리시스템 SKMS(SK Management System)를 재조명하고 있다. SKMS를 앞세워 최근 그룹 안팎의 불안정한 경영환경을 극복, 위기를 돌파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최 선대회장의 기일인 26일 재계에 따르면, 최태원 회장과 최재원 수석부회장, 최창원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SK가(家)는 지난 24일 가까운 가족들이 모여 고인의 26기를 추모했다.
SK그룹은 2018년 최 선대회장의 20주기 추모 행사를 끝으로 별도 행사를 열지 않고 ‘조용한 추모’를 이어가고 있다. 올해도 오는 30일까지 사내 엘리베이터와 서린사옥 1층 디스플레이에 추모 영상을 내보내며 SKMS 정신을 구성원들에게 전파할 예정이다.
최 선대회장은 1973년 형인 최종건 창업회장의 뒤를 이어 SK그룹(옛 선경)을 맡았다. SK그룹이 위기 때마다 꺼내드는 SKMS가 바로 최 선대회장의 철학이다. 최 선대회장은 기업이 대형화·세계화 되고 사회구조가 복잡해짐에 따라 주먹구구식 경영으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1979년 SKMS를 정립했다. SKMS는 정립 이후 45년간 경영환경 변화에 맞춰 개정을 거듭, 14차 개정안까지 나온 상태다.
특히, 최 선대회장의 리더십 중 주목받는 부분은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에서 발휘된 혜안과 위기극복이다. 10년 앞을 내다본 장기적 안목으로 중동지역 왕실과의 석유 네트워크 구축 등 치밀한 준비로 1980년 유공 인수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사실 SK는 유공 인수 7년 전인 1973년 일본 기업과 합작해 정유공장 설립을 추진했으나 1차 석유파동으로 좌절한 경험이 있다. 당시 정유 사업 진출은 무산됐으나, 한국 경제를 위기에서 구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이유로 한국을 석유 금수국가로 분류했고, 석유 수출량을 50% 삭감한 후 나머지도 10개월 안에 중단한다고 통고하는 등 한국 경제에 사실상 ‘사형선고’를 내린 상황이었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 친분이 두터웠던 최 선대회장은 급히 사우디로 날아가 야마니 석유장관과 만나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 전량을 사우디로부터 공급 받을 수 있게 했다. 5년 뒤인 1978년 2차 석유파동이 발발했을 때도 최 선대회장이 사우디로부터 하루 5만배럴의 석유 공급 약속을 받아냈다.
최 선대회장의 이러한 리더십은 결국 유공 인수에서 크게 빛을 발했다. 두 차례 석유파동을 겪은 정부는 유공 민영화 조건으로 ▷원유의 장기적·안정적 확보 능력 ▷산유국 투자 유치 능력 등을 내걸었다. 최 선대회장은 야마니 석유장관으로부터 ‘선경이 정유사업을 하게되면 필요한 원유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데 이어 알 사우디 뱅크에서 1억달러의 대부 보증서를 받아오며 능력을 입증했다. 결국 SK는 유공을 인수하는데 성공했으며, SK이노베이션으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른다.
이 같은 최 선대회장의 공로를 기리며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SK그룹 수뇌부들도 SKMS를 재차 강조하고 있다. 지난 6월 경영전략회의에 이어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열린 이천포럼에서도 SKMS가 주요 주제로 다뤄졌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등 그룹 차원의 대대적인 사업구조재편(리밸런싱)이 진행되는 가운데 구성원들 사이에서 SKMS를 되새길 필요성이 한층 커진 탓이다.
최태원 회장은 이천포럼에서 “SKMS는 그룹의 많은 멤버사와 구성원에게 공통적인 교집합 역할을 한다”며 “변화의 시기를 맞을 때마다 SKMS를 다시 살펴보며 우리 그룹만의 DNA를 돌아보고 앞으로 가야 하는 길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했다.
SK 관계자는 “최 선대회장은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꿈을 치밀한 준비와 실행력으로 현실로 만든 기업인”이라며 “선대회장이 정립한 SKMS는 어려울 때마다 되돌아보는 SK그룹의 근간이자 구성원들을 결집시키는 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