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관광의 모범, 일본 동부 3개현②

노벨문학상 ‘설국’의 배경, 자연예술 만개

폐교 재생, 농업 현대미술 소재로 재탄생

기요쓰협곡,계단식논,미인림..안구정화도

불빛무늬토기,최고의 쌀·사케 지혜 돋보여

지속가능 관광, 니가타 ‘대지 예술제’ 상생·성찰 여행[함영훈의 멋·맛·쉼]
니가타현 ‘대지의 예술제’ 아트투어 코스 중 하나인 호시토게 계단식 논

[헤럴드경제(일본 니가타)=함영훈 기자]이국(異國)의 낯섬이 느껴지지 않는다. 강원도와 경기도의 매력을 합친 듯한 일본 니가타(新潟)현이 친(親)자연 문화예술과 웰니스로 여행자들을 유혹한다.

동해 한복판을 기준으로 지도를 세로로 접으면 강원도와 니가타현이 묘하게 포개진다. 니가타현은 바다, 산의 경치에선 강원도와 비슷한데 올림픽이 열린 평창처럼 눈이 많이 내려, 노벨문학상 수상작 ‘설국’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동양에서 처음 발견된 똑똑한 동양인의 상징 ‘경기 연천 주먹도끼(Acheulian Axe)’, 임금님 수라상에 오른 경기 이천 쌀처럼, 니가타현은 일본 최고 국보 중 하나인 4500년전 불꽃무늬토기, 일본 최고의 쌀, 맑은 물로 빚어낸 일본 최다 양조장의 사케로 유명하다.

‘포가튼 저팬’ 니가타를 안보고 일본을 말하지 말라[함영훈의 멋·맛·쉼]
니가타현 사케
지속가능 관광, 니가타 ‘대지 예술제’ 상생·성찰 여행[함영훈의 멋·맛·쉼]
니가타 온천 [니가타현 관광국 제공]

‘설국’의 핵심 배경인 에치고유자와 온천과 그 옆 갈라유자와 스키장, 최고의 일본술 백화점 다운 면모 등으로 최근 관광객이 늘고 있다. 무엇보다 자연을 사랑하고, 문화와 ‘관계’를 존중하는 지역 주민들의 인간미가 돋보인다.

지속가능 축제로 발돋음한 ‘대지의 예술제’

니가타현에선 지금 자연-민속-인정을 문화예술로 승화시킨 ‘대지의 예술제(大地の芸術祭:이하 대지 예술제)’가 이제 막 시작됐다. 오는 11월 10일까지 진행되는 이 축제는 도카마치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 중이다. 인구감소 극복, 지역 재생, 지역 공동체 활성화 등을 위해 지난 2000년에 시작, 3년마다 개최되면서 이제는 일본의 지속가능 관광의 모범이 되고 있다.

대지 예술제는 환경보호, 주민과 여행자의 협력, 전통문화 보호, 지역 산물의 이용 등을 내용으로 한다. 예술을 다리로, 농지를 무대로 삼아 사람과 자연을 연결한다. 또 지역 문화 속에 담긴 가치를 지역민과 세계인이 공유하며 여러 나라에서 작품 311점(신작 85점 포함)을 가져와 선보인다.

지속가능 관광, 니가타 ‘대지 예술제’ 상생·성찰 여행[함영훈의 멋·맛·쉼]
축제 ‘대지의 예술제’의 거점, MonET 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물풍선 작품 '넘치다'
지속가능 관광, 니가타 ‘대지 예술제’ 상생·성찰 여행[함영훈의 멋·맛·쉼]
기요쓰 협곡

미술관 야외, 폐교나 창고를 재생한 뮤지엄, 시민공원 및 계단식 논을 가진 야산에서 작품이 전시돼 다양한 곳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대지 예술제에서 아트투어를 하면서 근처에 있는 ▷스페인 파라도르 같은 헤리티지 호텔 류곤 ▷고시노간빠이, 구보타만쥬, 하카이산 등 일본 최고의 사케 ▷일본 최고의 고시히카리 쌀밥 ▷마쓰노야마 온천 등 일본 최고의 약탕 ▷기요쓰협곡 같은 명승의 풍광 ▷지혜와 절경을 모두 품은 계단식 논 ▷청정숲 미인림 등도 체험할 수 있다.

미술관·원더랜드에서 관람 투어

니카타현 중심지는 도카마치시(十日町市) 내 십일정(도카마치)이다. ‘에치고-쓰마리 사토야마 현대 미술관(MonET:모네)’과 ‘그림책(繪本)과 나무열매(木實) 미술관’ 등이 포진해 있다. 인근 미나미우오누마(南魚沼)엔 전통호텔 ‘류곤’이 일본 정원의 아름다움, 건강 미식, 온천의 웰니스를 제공한다.

모네의 중정(中庭)에 들어서면 논을 상징하는 못과 사람이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작은 다리들이 기하학적으로 놓여있다. 이곳에선, ‘아미다 크로싱’ 등 관객 참여형 설치미술, 시각-촉각으로 감상하는 투명 물풍선 작품 ‘넘치다’, 매직 미러를 단 정크 예술 ‘콜로니’, 사찰 ‘풍경’ 형태의 시청각 모빌 작품, 건물 기둥과 연못의 다리가 직선으로 연결되는 뷰포인트 등 지혜롭고 창의적인 걸작들을 만난다.

지속가능 관광, 니가타 ‘대지 예술제’ 상생·성찰 여행[함영훈의 멋·맛·쉼]
모네 건물 회랑기둥과 중정 못 다리가 일직선 연결되는 지점

도카마치 하치 마을에 있는 ‘그림책과 나무열매 미술관’은 폐교가 된 사나다 초등학교를 무대로 삼아, 한국-일본 사이 동해에서 떠밀려온 나무조각과 열매 등 자연물에 색을 칠해 동심의 푸르름과 어린이들이 흔히 떠올리는 상상 속 요괴들을 표현했다. 폐교 직전 마지막 학생 3명이 칠판에 적은 낙서 ‘사다나학교 최고’, ‘친구야 너무 좋아해’, ‘상목촌 선생님’ 등의 글귀가 남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도카마치 북부 가와니시(川西) ‘나카고 원더랜드’에선 널직한 초원 위에 이글루 형태의 움집을 형상화한 작품, 이곳에 살던 동물들의 조각 등이 눈에 띈다.

기요쓰 협곡·호시토게 계단식 논의 절경

시의 남동부 나카사토(中里) 지역은 많이 강들이 교차하는 곳이다. 대지의 예술제에서 가장 큰 인기를 끄는 곳 중 하나는 고이데미즈노토(小出癸) 산촌에 있는 기요쓰 협곡 터널이다.

이 일대 온천의 인기로 많은 사람이 몰리던 중 1988년 대형 낙석 사고가 발생해 폐쇄했다 1996년 안전한 터널로 만들어 다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750m 터널에 자연의 5대 요소인 나무, 흙, 금속, 불, 물을 소재로 예술적 콘텐츠를 입혔다.

‘포가튼 저팬’ 니가타를 안보고 일본을 말하지 말라[함영훈의 멋·맛·쉼]
기요쓰 협곡 [대지의 예술제 공식 홈페이지]
지속가능 관광, 니가타 ‘대지 예술제’ 상생·성찰 여행[함영훈의 멋·맛·쉼]
대지의 예술제 2024 개막식에 니가타,나가노,기후현이 ‘예술여행’ 협약을 맺고 있다.

얕게 물을 채운 터널 전망대 안으로 맨발로 들어가면, 주상절리 바위산과 그 사이로 청정 옥수가 장쾌하게 흐르는 절경을 만난다. 신이 만든 자연이란 작품에 감탄이 절로 난다. 안에선 밖이 보이고,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는 화장실에서 화들짝 놀라고 나면, 스태프는 손님들을 족욕탕으로 안내해 힐링을 더해준다.

도카마치시 서쪽끝 호시토게(星峠)의 계단식 논(棚田)은 산지에 200여개의 논을 계단식으로 조성했던 니가타 주민들의 지혜과 아름다운 풍광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물고기 비늘처럼 경사면에 착상한 계단식 논들에 제각각 많은 물이 고여 아름다운 풍경을 빚어낸다.

노부타이~마쓰시로성 사이에 40점 작품 전시

서쪽 마쓰다이(松代) 지역 노부타이(農舞台:농업 무대)는 필드 뮤지엄이라 할만하다.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가 설계한 거점 건축물 노부타이에서 산 정상의 마쓰시로성(城) 까지 약 2㎞의 마을 산에 약 40점의 작품이 산재해 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농가월령가’. 농부의 월별 일상을 100m 가량 앞 계단식 논에 설치된 농업 작품과 매칭시켜 감상하는 것이다. 여행자들 사이에 ‘매칭 촬영 잘하기’ 내기도 벌어진다. 노부타이 내 ‘사토야마(里山:마을 산) 식당’은 로컬푸드 가정식 뷔페이다. ‘설국’ 배경지 답게 설국 홍차도 판다.

지속가능 관광, 니가타 ‘대지 예술제’ 상생·성찰 여행[함영훈의 멋·맛·쉼]
농부의 1년을 기록한 시와 100m 떨어진 계단식 논 농업무대 작품을 매칭시키는 촬영

같은 마쓰다이 지역에 있는 에치코쓰마리 소코(Soko) 뮤지엄은 2015년 옛 키요쓰쿄 초등학교의 체육관을 재생한 ‘창고 미술관’이다. 도시에서 작품 전시를 하고 싶어도 보관할 장소가 없어 어려움을 겪던 예술가들을 배려해 폐교를 개조한 것이다. 폐교 지역민들은 예술이 들어와 좋고, 예술가들은 작품을 보관할 수 있어 좋은, 그야말로 상생 모델이다.

이곳엔 물줄기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 삶을 다룬 작품들이 상설 전시된다. 과거 물줄기가 있었던 지점에 예술적인 색감의 기둥을 도열시켜 땅 위에 회랑을 만들었다. 인공 도랑인 ‘레이보우워터’ 기념물, 산사태 기념비도 어느덧 작품이 되었다.

4색 매력 송산 미인림과 마지막교실

마쓰다이 남쪽에 붙은 마쓰노야마(松山)에서 펼쳐지는 자연예술은 흑-백-적-녹 등 4색이다.

‘마지막교실’은 폐교된 옛 히가시카와(東川) 초등학교를 ‘어둠 속에서 언듯 비치는 희망의 빛’ 예술로 재생한 곳이다. 폭설이 잦아 흰색으로 고립된 마을 풍경이 역설적으로 검정색 예술이 됐다.

지속가능 관광, 니가타 ‘대지 예술제’ 상생·성찰 여행[함영훈의 멋·맛·쉼]
미인림

마쓰노야마 마쓰구치에 있는 미인림은 초록초록한 너도밤나무 군락지이다. 1920년대 숯을 만드느라 벌거숭이가 된 3ha 부지에 너도밤나무가 자생해 지금은 100년 된 나무들이 울울창창 하늘을 향해 솟아났다. 아름다운 미인림 사이엔 자연 저수지와 인공다리가 생겨, 많은 프로-아마추어 작가들의 출사 포인트가 되었다.

미인림 옆 자연과학관의 부제는 ‘교로로’이다. 미인림의 주인공, 붉은색 호반새가 지저귀는 소리인데, 처연하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하다.

풍요의 기반 위에 자연-인문-예술을 발전시킨 니가타현의 대지 예술 여행은 힐링, 웰니스 외에도 인류의 상생과 지속가능한 미래를 생각하는 성찰의 시간을 덤으로 선물한다. [취재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