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IRP 잔액 1년 새 10조원↑…잔액 50조원 돌파
연 118만원 절세 혜택…DC·DB형보다 증가율 높아
퇴직연금 원리금보장 쏠림은 여전…장기수익률 1%대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주요 은행 개인형퇴직연금(IRP) 잔액이 1년 새 10조원 넘게 불어나며 처음으로 50조원 규모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화로 인해 퇴직연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IRP 운용에 따른 비과세 혜택이 강화된 결과다. 심지어 최근 원리금비보장형 상품의 1년 수익률 또한 10%대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비교적 수익률이 저조한 원리금보장형 상품 쏠림 현상이 이어지며, 퇴직연금 운용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은행 IRP 1년 새 10조원↑…수익률도 10%대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올해 2분기 말 기준 IRP 적립금은 52조1634억원으로 전년 동기(41조338억원)과 비교해 11조1296억원(27.1%)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직전 1년 증가폭(9조910억원)보다 2조386억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돈이 IRP로 몰리고 있는 셈이다.
증권사와 보험사를 포함한 전체 금융권의 IRP 잔액 또한 상반기 말 기준 88조176억원으로 1년 전(66조7429억원)과 비교해 21조2747억원(31.9%) 늘어났다. 다만 증가폭 절반 이상이 5대 은행으로 몰리며, 은행권으로의 자금 쏠림이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올 2분기 말 기준 전체 IRP 잔액의 60%가량이 5대 은행에 집중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여타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과 비교해 IRP에 많은 잔액이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올 2분기 말 기준 전체 금융권의 DC형 퇴직연금 잔액은 103조7184억원으로 1년 전(87조320억원)과 비교해 16조6824억원(19.2%) 늘었다. DB형 퇴직연금 잔액은 같은 기간 186조9979억원에서 202조5472억원으로 15조5493억원(8.31%) 늘어났다.
IRP로의 자금 쏠림이 극대화된 요인 중 하나는 뚜렷한 절세 혜택이다.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세법개정안에 따라, IRP 등 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저축 납입액은 900만원까지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현재 연간 IRP 계좌에 한도 900만원을 채우면 다음해 연말정산에서 118만8000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여기다 전반적인 퇴직연금 수익률이 회복된 영향도 작용했다. 국민은행의 최근 1년 원리금비보장형 IRP 수익률은 13.62%로 주요 은행권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하나은행 또한 13.26%로 13%대 수익률을 보였다. 그 뒤로는 NH농협은행 12.9%, 우리은행 12.71%, 신한은행 12.25% 등으로 집계됐다. 올해 들어 증시 회복세가 부각되며 이와 연동된 상품의 수익률이 늘어난 것이다.
장기 수익률은 1%대…‘원리금보장’ 쏠림 여전
문제는 장기적인 퇴직연금 수익률이 아직 밑바닥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5대 은행의 원리금비보장형 IRP 평균 수익률은 올해 2분기 말 기준 2.36% 수준에 불과하다. 원리금보장형의 경우 1.66%로 2%도 채 되지 않는다. 가입자의 무관심 등으로 퇴직연금이 방치되며 예·적금이나 보험상품 등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대다수 퇴직연금이 몰린 데다, 금융상황 변화에 따른 상품 조정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7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시행하며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시도했다. 가입자가 별다른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을 경우, 사전 지정한 상품으로 적립금을 운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디폴트옵션을 선택한 퇴직연금 가입자 적립금 중 90%가량이 원리금을 보장하는 초저위험 상품에 쏠려 있어, 수익률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특히 하반기 중 금리 인하가 단행될 경우, 수익률은 더 떨어질 확률이 높다. 대부분 상품이 정기예금을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소비자들의 관심을 제고할 수 있도록 높은 수익률을 시현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 보장 등에 대한 투자를 지속해야 한다는 조언이 이어진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결국 수익률이 높게 나타나는 게 소비자들의 관심을 끄는 지름길”이라며 “포트폴리오 선택권 확장 및 수익률 향상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