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요구불예금 한 달 새 24조원 늘어
계절적 요인에 투자처 찾지 못한 자금 유입
‘공짜예금’ 늘어나며 수익성 향상 여력도 커져
“변동성은 계속…보수적으로 자금조달 봐야”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감소세를 기록하던 주요 은행의 저원가성 예금이 지난달을 기점으로 다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계절적 요인과 함께, 쉽사리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은행에 머무는 자금이 늘어난 결과다. 이처럼 올해 들어 저원가성 예금을 포함한 수신 잔액이 불어나며, 은행권에서는 자금조달 비용 감소에 따른 수익성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공짜예금’ 한 달 새 24조원↑…총수신 2000조 돌파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638조8317억원으로 전월 말(614조1055억원)과 비교해 24조7262억원(4.02%)가량 대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말 기준 590억7000만원 수준에 불과했던 5대 은행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647조9000억원 수준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4월 들어 대형 공모주 기업공개(IPO) 청약 증거금(25조원 규모) 등의 영향으로 30조원가량의 잔액이 줄어들었다. 이어 5월에도 소폭 감소세를 기록했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달을 기점으로 다시 상승했다.
여기에는 계절적 요인과 함께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은행으로 흘러들어온 영향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예상보다 늦어진 데 따른 결과라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 측면으로 보면 정기예금 만기 자금 등이 투자처를 결정하지 못하고, 통장에 예치하고 관망하는 자금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정기예금을 찾는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91조1524억원으로 전월 말과 비교해 1조4462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기적금 잔액은 34조6084억원으로 1조1252억원 늘었다. 은행에 돈이 몰리는 가운데, 5대 은행의 총수신 잔액도 한 달 새 16조원가량 증가하며 총 200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익성 오른다” 채권금리도 연중 최저 수준
이처럼 요구불예금을 중심으로 한, 은행으로의 ‘자금 쏠림’ 현상이 지속될 경우 은행의 수익성 지표는 향상될 수밖에 없다. 예금 이자가 0%에 가까운 자금인 탓에, 비용을 거의 지출하지 않고도 자금조달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올 1분기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보상 등에도 실적을 선방한 요인 중 하나로 ‘저원가성 예금’ 증가가 꼽힌다. 4대 시중은행 중 1분기 NIM이 가장 낮은 수준이었던 우리은행의 저원가성 예금은 같은 기간 거의 증가하지 않은 반면, 6조원 넘게 저원가성 예금을 늘린 국민은행의 순이자마진은 개선세를 보였다.
동시에 은행의 자금 조달 기준으로 분류되는 은행채 금리도 최근 감소세를 지속하고 있다. 수신 외 자금 조달에서도 숨통이 트인 셈이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의 기준인 5년물 은행채(AAA) 금리는 1일 기준 3.490%로 올 최고점과 비교해 약 0.5%포인트가량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대출 금리의 기준이 되는 1년물 은행채 금리 또한 1일 기준 3.476%로 연중 최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은행권에서는 예금회전율 변동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섣불리 자금 확보를 자신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 1월 20.2회까지 올랐던 국내은행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2월 17.3회 ▷3월 18.1회 ▷4월 19.4회 등으로 등락을 기록하고 있다. 미 기준금리 전망, 국내증시 향방 등에 따라 수시로 자금 수요가 뒤바뀌면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미 기준금리 전망을 포함한 대내외적 영업 환경에 아직 불확실성이 많은 상황”이라며 “기준금리 인하, 밸류업 등 요인으로 증시가 급등할 경우 다시 자금이 빠져나갈 확률이 적지 않기 때문에 보수적인 관점에서 자금조달 상황을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