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수펙스 의장 선임 200일…그룹 체질개선 ‘선봉’
투자·사업 비효율 정리…이례적 계열사 대표 교체
‘구조조정 적임자’ 평가…‘소탈’ 임직원 신뢰 두터워
외부 노출 줄이고 내실 다지기 주력…‘실사구시’ 성향
28~29일 경영전략회의서 ‘리밸런싱’ 방향성 윤곽
[헤럴드경제=정윤희·한영대 기자] ‘토요 사장단 회의’ 부활, 임원 월 2회 금요일 휴무 반납, 사업구조 재편(리밸런싱), 실적 부진 계열사의 최고경영진 물갈이까지.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이하 수펙스) 의장이 SK그룹의 ‘구원투수’에 등판한 지 지난 24일부로 200일이 됐다. 최 의장은 선임 직후부터 SK그룹의 고강도 체질개선에 총력을 기울이며 말 그대로 ‘숨 가쁜 200일’을 보냈다. 특히, 사업 포트폴리오 재구성의 총대를 메며 ‘깐깐한 경영자’ 면모를 유감 없이 발휘했다는 평가다.
SK는 최 의장 선임 이후 본격적으로 ‘리밸런싱’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이를 통해 방만하게 운영되던 중복투자·사업 등을 정리하고 미래 사업 투자를 위한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SK가) 그동안 투자 확대에 전념했다면 올해부터는 확실히 ‘군살빼기’에 집중하는 모습”이라 보고 있다.
실제 최 의장은 취임하자마자 방만하게 운영되던 ‘투자’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대신 반도체, 인공지능(AI)으로 대표되는 미래 먹거리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과거의 SK가 오로지 투자를 통한 ‘외연 확장’에 전념했다면,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주력 사업을 키우겠다는 의미다.
최 의장이 취임 이후 가장 먼저 최근 2~3년간 SK그룹이 진행했던 투자 현황에 대해 검토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말에는 수펙스와 SK㈜로 분산된 투자 기능을 SK㈜로 모두 이관키도 했다.
최 의장은 지난 4월 수펙스 회의에서 “SK는 글로벌 시장에서 강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는 사업군과 성장 잠재력이 충분한 포트폴리오, 탄탄한 기술 역량 등을 두루 보유하고 있다”며 “더 큰 도약을 위해 자신감을 갖고 기민하게 전열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의장이 주도하는 ‘리밸런싱’ 방향성의 윤곽은 오는 28~29일 경기 이천 SKMS연구소에서 열리는 경영전략회의(옛 확대경영회의)에서 나올 전망이다. 현재 검토되는 사업 재편 방안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 SK온과 SK엔무브 합병,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지분 매각, SK온과 SK E&S 합병 등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사업 조정은 중대한 사안인 만큼 경영전략회의에서는 방향성만 정해질 뿐, 구체적인 방법론은 추후에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 넣어 ‘일하는 문화’를 만들기도 했다. 올해 2월에는 24년 만에 그룹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참석하는 ‘토요 사장단 회의’를 되살렸다. 수펙스 임원들은 유연근무제 일환으로 월 2회 부여된 금요일 휴무 사용 여부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사실상 금요일 휴무를 반납한 셈이다.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경영진에게는 ‘신상필벌’ 원칙을 적용한 것도 눈에 띈다. 지난달에는 박경일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 사장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물러났고, 김형근 SK E&S 재무부문장이 그 자리에 앉았다. 최근에는 투자전문 중간지주사 SK스퀘어의 박성하 대표이사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SK가 매년 12월에 진행하는 정기 임원인사 이전에 대표이사를 교체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SK온에서도 최근 성민석 최고사업책임자(COO) 부사장이 영입 10개월 만에 보직 해임됐다.
그룹 내에서는 최 의장이 오너가(家) 중에서도 사업구조 개편에 적임자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중간지주사 SK디스커버리를 이끄는 최 의장은 그동안 디스커버리 계열 사장단으로부터 꾸준히 사업 포트폴리오 점검에 대한 보고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수펙스 의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이를 그룹 전체로 확대한 셈이다. 최 의장이 ‘구조조정’과 ‘사업재편’의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최 의장에 대한 임직원들의 신뢰도 두텁다. SK 관계자는 “다른 경영진들과 비교했을 때도 구성원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한다”며 “SK가 처한 현 상황에 대해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전을 싫어하는 소탈한 성격 덕에 임직원들은 SK 서린사옥 근처 식당이나 카페 등에서 최 의장을 심심찮게 마주친다는 전언이다.
사실 최 의장 본인은 오히려 ‘은둔의 경영자’에 가깝다. 의장 취임 이후에도 지난 4월 ‘리밸런싱’을 공식 선언한 수펙스 회의를 제외하면 좀처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다. 외부 노출을 최소화하고 ‘내실 다지기’에 집중하는 최 의장의 ‘실사구시’ 성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같은 맥락으로, 최 의장은 수펙스 의장 선임 하루 전날까지도 이를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 회장의 꾸준한 설득에 결국 이를 수락했다는 것이다. 최 의장이 그룹 경영 전반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리밸런싱’ 작업을 통한 SK그룹 정상화까지가 자신의 소임이라는 생각이 확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의장은 지난 1994년 선경인더스트리(현 SK케미칼) 과장으로 입사, SK그룹에 몸을 담은 지 올해로 30년이 됐다. 최 의장은 SK디스커버리를 오랫동안 이끌며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섬유·석유화학 기업인 SK케미칼을 바이오·헬스케어 기업으로 탈바꿈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