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지난 24일 오후 6시 30분께 서울 용산구 새나라어린이공원. 초등학교와 접한 터라 어린이 10여 명과 반려동물, 학부모들로 복작였다. 그러나 공원 한 켠에 놓인 수돗가, 정확히는 공공 음수대는 물을 튼 흔적조차 없이 메말라 있었다.
공공 음수대를 이용한 적 있는 질문에 이날 만난 4명의 학부모은 모두 고개를 내저었다. 학부모 A씨는 “마실 수 있는 물인 줄 몰랐다”며 “가끔 손을 씻기는 일은 있어도 아이가 이 물을 마시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무더운 날씨 ‘공짜’로 물을 마실 수 있는 공공 음수대가 곳곳에 있는데도 이용률은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시내에 설치된 공공 음수대는 약 2800곳에 달하지만 아리수(서울시 수돗물)를 마신다는 응답은 6명 중 1명에 그쳤다. 환경단체들은 무료인 데다 안전한 아리수 음용률을 높여 페트병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아리수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 시내에 공공 음수대가 2836개소, 2만6491대 설치돼 있다. 서울시나 아리수, 지도 앱 등에 ‘음수대’를 검색하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음수대 이용은 저조했다. 여성환경연대가 지난해 5월 17일부터 6월 8일까지 시민 200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집 밖에서 물을 마실 때 공공 음수대를 이용한다는 응답은 16.4%에 불과했다.
주로 밖에서 마시는 물은 병에 담긴 먹는 샘물, 즉 생수다. 응답자의 55.8%가 집 밖에서 물을 마실 때 플라스틱 생수를 구입했다. 그 다음으로 집에서 가져온 물을 마신다(27.7%)는 응답이 많았다.
공공 음수대를 이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청결 및 위생이 걱정돼서’(32.1%)로 조사됐다. 다만 공공 음수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마시지 못한다는 의견도 비슷하게 나왔다. ‘주변에 음수대가 없다’(15.0%)거나 ‘음수대 위치를 모른다’(14.3%)는 이유다.
음수대가 많이 설치돼 있지만 정작 일상 생활에서 접근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여성환경연대에 따르면 생수를 구입하는 경우는 주로 공원 등 나들이 시(26.0%),야외 길거리(24.1%), 기차역 또는 터미널(19.4%), 공연장(12.3%), 영화관(9.1%), 스포츠경기장(5.2%) 순이다.
반면 음수대가 설치된 장소는 학교나 공공기관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공공 음수대 2836개소는 학교에 1243개소, 공공기관 413개소 공원 994개소 설치돼 있다. 지하철 등은 15개소로 나타났다. 여성환경연대는 “동서울터미널, 고속버스터미널, 서울역 등은 매우 혼잡한 다중이용시설임에도 설치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공공기관뿐 아니라 민간 다중이용시설에도 음수대가 늘어나면 아리수 음용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같은 설문에서도 응답자 중 86.7%가 민간 다중이용시설에 음수대 설치를 의무화하는 정책에 동의했다.
한 응답자는 “민간 시설은 사람들의 소비와 인식이 드러나는 공간”이라며 “민간 다중이용시설에 음수대가 노출되면 ‘깨끗하고 관리가 잘 된 백화점이 인정했다’는 인식을 줄 것 같다”고 답했다.
아울러 공공 음수대 관련 적극적인 홍보도 요구됐다. 서울아리수본부는 연 4회 야외 공공 음수대의 수질을 검사하고 있다. 이날 서울 용산구 내 공공 음수대 3곳을 둘러본 결과 모두 지난 한달 이내에 진행된 수질 검사에서 ‘적합’ 판정을 받았다.
특히 아리수는 350가지 항목에 대해 수질 검사를 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검사 항목(166개)의 두 배가 넘는다. 촘촘한 관리가 하고 있는데 비해 인식과 이용률은 그만큼 끌어올리지 못한 셈이다.
공공 음수대를 향한 인식과 수돗물 음용률을 높이기 위해 여성환경연대는 올해 처음으로 공공 음수대 시민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제로웨이스트샵 5곳과 함께 이달 말까지 공공 음수대 약 300개소를 직접 찾아 수질 검사 여부 등을 확인하는 게 목표다.
강우정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생수 등 병입 음료가 너무 많이 소비되고 있고 사람들은 이를 점점 더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수돗물이 대안이 될 수 있는 만큼 시민들의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