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충실의무 확대 두고 정부·재계 갈등
이복현 금감원장 ‘배임죄 폐지’로 달래기
재계 “1대 1로 맞교환 대상 아냐” 반발
26일 이복현 참석 ‘밸류업 세미나’ 주목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움직임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재계의 반발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배임죄 폐지를 ‘당근’으로 제시했지만 반대 여론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재계는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를 ‘맞교환’하는 것은 절대 불가하다는 강력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 원장은 오는 26일 경제단체가 주관하는 ‘밸류업 정책 세미나’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재계를 달래기 위한 추가 당근책이 나올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앞서 이 원장은 지난 14일 ‘상법 개정 이슈’ 브리핑에서 배임죄 폐지론을 처음 꺼내들었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할 경우 기업 이사 처벌 가능성이 과도하게 커진다는 우려에 이같은 제안을 했다.
이보다 이틀 앞선 지난 12일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정책 세미나에서 보완장치로 “경영판단의 원칙을 법에 명시하자”고 언급한 것보다 한층 발전된 제안이었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이사가 주의를 다했다면 주주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배상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계는 배임죄 폐지를 상법 개정과 연계해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상법 개정은 배임죄 폐지와 바터(1대1 교환)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22대 국회가 여소야대로 구성된 상황에서 배임죄 폐지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은 점도 재계의 호응이 낮은 이유로 꼽힌다.
그동안 기업들은 상법 개정에 따라 이사가 단기이익을 우선시하는 주주들에 충실할 경우 장기적인 투자 집행이 어려워져 사업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줄곧 주장해왔다.
충실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사를 겨냥한 주주들의 소송이 남발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사가 투자재원 확보를 우선시하는 대주주의 의견을 반영해 업무를 집행할 경우 일반 주주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그러나 이 원장은 자본시장 선진화 세미나에서 “쪼개기 상장 같이 회사나 특정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례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며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여기에 22대 국회에 관련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움직임이 빨라지자 경제단체도 대응에 나섰다.
경제단체 8곳(한국경제인협회·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사협의회·코스닥협회)은 25일 상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공동건의서를 정부와 국회에 제출했다.
경제단체들은 상법 개정안이 현행 회사법 체계를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상법은 이사가 회사와 위임 계약을 맺고 회사의 대리인으로서 의무를 수행하는데 개정안은 이사와 주주 사이에 계약과 위임은 없는데 대리인 관계만 형성되는 법리적 문제가 발생해 법 체계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6일에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한국경제인협회 주관으로 서울 마포구 상장회사회관에서 ‘밸류업 정책 세미나’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도 이사 충실의무 확대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다뤄질 전망이다.
아울러 상속세 인하, 경영권 방어수단 확보 등 재계가 오랜 기간 요구해왔던 사안들도 주요 의제로 꼽힌다. 이 원장도 이날 축사를 위해 세미나에 참석할 예정이어서 기업들의 애로사항에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