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호 서울청장, 기자간담회서 ‘1000명’ 수사선상 밝혀
세무당국과 협업 가능성도 제시…‘고소득 자영업자’ 개원의 긴장
복지부도 불법리베이트 20건 경찰에 수사 의뢰…전방위 수사
편집자주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a) 행간을 다시 씁니다.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의료계에 만연했던 ‘리베이트’ 관행이 역대급 철퇴를 맞을 조짐이다. 고려제약의 리베이트 제공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은 지난 17일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가 1000명이 넘는 것으로 확인된다’고 깜짝 발표했다. 고려제약 뿐만 아니라 다른 제약회사로도 수사범위를 넓힐 수 있고, 현금 전달 역시 입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했다. 경찰의 역대급 수사 규모 발표에 개원가는 숨죽이는 모양새다. 뿐만 아니라 의료계가 집단 휴진을 결의한 시점과도 맞물려 경찰 수사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17일 기자들과의 만남에서 “제약회사를 상대로 확보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현금을 직접 받거나 가전제품 등 물품을 받은 의사, 골프 관련 접대를 받은 의사가 1000명 이상인 것으로 확인했다”며 “이들이 많게는 수천만원, 적게는 수백만원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제약사 등이 자사 의약품·의료기기의 신규 채택, 처방 유지 및 증대를 목적으로 병원이나 의사에게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리베이트 행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형법, 보건관련법령(의료법, 약사법, 의료기기법) 등에 따라 규제된다.
조 청장은 ‘고려제약 외의 다른 제약회사도 들여다 볼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수사를)하다가 확인이 된다면 계속 해야한다”며 수사범위를 넓힐 수 있음을 드러냈고, 전통적 리베이트 수단인 ‘현금 전달’도 “어느 정도 확인이 될 것 같다”고 자신감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리베이트의 구조적 정황이 여러 군데서 발견돼 한 제약회사만의 문제라고 보기엔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어 세무당국 등과 협의해 수사를 확대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며 1000명의 의사들의 소속은 “(대형병원과 동네병원 등) 다양하게 있다”고 밝혔다.
의료계 입장에서는 세무당국까지 가세한다는 대목이 특히 뼈아플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개원의와 같은 고소득 자영업자를 특별관리대상(VIP)로 분류하고 있다. 병의원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고의 탈세가 아니더라도 세무리스크를 직면하는 경우가 흔하다.
고려제약 리베이트 수사는 공익제보를 받은 국가권익위원회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본격화했다.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수사하다가 지난 3월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할 수 있는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로 이관됐다. 형기대는 지난 4월 고려제약 본사를 압수수색, 고려제약 관계자 8명과 의사 14명을 약사법 위반, 배임증재 등 혐의로 입건했다.
또 서울 노원경찰서에서도 대학병원 전공의들을 중소 제약사에서 리베이트를 받은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조사 중인 사안도 있다. 전공의들은 회식비와 야식비 등을 지원받은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은 지난해 무혐의 처분됐지만, 최근 서울경찰청 지휘를 받고 다시 수사가 시작됐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도 지난 3월 21일부터 5월 20일까지 2개월간 의약품·의료기기 불법 리베이트 집중신고기간을 운영, 신고된 불법 리베이트 사건 20여건을 지난달 말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경찰청은 20여개 사건을 각 관할 수사관서에 배당해 수사에 착수토록 했다.
제약업계와 의료계 전반의 리베이트 관행을 파헤치는 경찰의 전방위적인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의료계는 잔뜩 긴장하고 있다. 마침 의료계가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계속해서 반대하면서 집단 휴진을 결의한 시기와 맞물려 경찰이 압박하는 모양새로 묘하게 비친다는 평가도 나온다. 경찰 측은 기존부터 하던 수사라며 의정 갈등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지만 의협은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만큼 향후 수사 진행 경과에 많은 관심이 쏠릴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