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커뮤니티 등서 ‘미필적 고의 살인’ 수사 필요성 여론 확대

경찰 “입건 전 사실관계 조사 단계… 법리판단 일러”

학계·법조계 “이론상 상정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 적용 어려워”

“미필적 고의 살인”…전 의협회장, 훈련병 사망사건 중대장 살인죄 고발
지난 30일 전남 나주시 한 장례식장 야외 공간에서 얼차려 중 쓰러졌다가 이틀만에 숨진 훈련병에 대한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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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용경·박지영 기자] 경찰이 훈련병 사망 사고 책임이 있는 지휘관 2명을 업무상과실치사 및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 피혐의자로 입건 전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경찰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까지 범위를 넓혀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군기훈련이 아닌 고의성이 다분한 가혹행위로 봐야한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법조계 대다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전망을 내놨다.

31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지난 28일 군에서 사건을 이첩받은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는 규정을 위반한 얼차려를 지시해 훈련병을 사망케 한 중대장 등 군 간부 2명을 업무상과실치사 및 직권남용가혹행위 혐의 피혐의자로 보고 사실관계 전반을 확인하고 있다. 지난 29일부터는 사망한 훈련병과 함께 군기훈련을 받은 동료 훈련병 5명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고 있다.

다만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경찰이 해당 중대장에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 적용도 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규정을 위반한 무리한 얼차려 지시가 훈련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직접적 원인이 됐고, 지금껏 언론에 보도된 정황상 고의성이 다분하다는 이유 등이 언급됐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법리적인 부분은 사실관계 확인 이후 판단해야 될 부분이지 현 단계에서 그렇게(법리적 판단에 대해) 말할 수 없다”라며 “기본적 사실관계를 토대로 판단할 뿐 이것도 저것도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수사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도 “수사 과정에서 얼마든지 혐의가 추가될 수 있고 죄명이 변경될 수 있지만, 미필적 고의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건 위험한 생각”이라며 “군에서 알려진 내용에 기반했을 때 현재로서 경찰은 업무상과실치사와 직권남용가혹행위 두 가지 죄목을 의율할 수 있다는 정도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학계와 법조계에서도 현재까지 드러난 상황만으로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다수를 이뤘다.

검사 출신인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살인의 고의가 인정될 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현실적으로 훈련병이 죽기를 바라고 얼차려를 지시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훈련병들이 아프다고 얘기했는데도 이를 꾀병이라고 무시한 부분이 오히려 과실로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정을 위반한 얼차려로 인해 가혹행위죄는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형법 전공인 박용철 서강대 로스쿨 교수도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려면 기본적으로 ‘죽어도 좋다’,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인식하는 게 기본적으로 필요하다”며 “지금까지 언론 보도를 통해서 보면, 몸이 안 좋다는 보고를 했는데 중대장이 묵살했다는 취지라 이 정도 사실관계만을 갖고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 교수는 “예컨대 폭행이 과다했을 때 단순히 과실치사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살인죄로 볼 수 있을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이 같은 경우에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하기는 대체로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상식적으로 군대 지휘관의 마음 속 상태를 입증하기는 한계가 있다”며 “규정을 지켜야 하는 지휘관으로서의 책무가 있는데 그것을 지키지 못한 만큼, 과실치사 혐의를 입증하는 것이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검사 출신인 조덕재 법무법인YK 변호사는 “이론적으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도 있겠지만, 실무상 인정되기는 거의 어렵다”며 “이번 사건은 전형적으로 직권남용가혹행위죄가 인정될 것 같은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에 대해 “예견된 인재”라며 “군대에서 만연해 있는 규정 위반 문제가 훈련병의 사망이라는 비극적 결과로 나타나 너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사건에 대해 일부 법조인들 사이에선 경찰이 미필적 고의 여부를 충분히 고려하고 수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단순히 업무상과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시 중대장은 상황을 전반적으로 관장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고, 그 날의 날씨 상황이나 얼차려 가혹행위를 하게 된 배경 등 전반적 상황을 커버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만약 해당 중대장이 실제로 스포츠 관련 학과를 나왔음에도 사망한 훈련병의 이상 징후 보고를 무시한 채 가혹행위를 이어간 것이라면 죽거나 죽을 수도 있겠다는 인식 가능성이나 예견 가능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살인죄로 판단하지 않더라도 미필적 고의 여부에 대한 수사는 반드시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아울러 단순한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가 아니라, 군형법상 직무수행 중인 군인 등에 대한 상해치사 혐의 등 형이 더 센 유형의 범죄의 적용 여부도 검토해야지, 단순히 두가지 혐의만 단정해선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건이 발생한 12사단에서 군 복무를 했던 다른 변호사도 “완전군장 상태로 구보나 팔굽혀펴기 등을 시켰다는 건 군기훈련이 아닌 괴롭히기 위한 목적의 가혹행위로 봐야 한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혐의 적용 여부를 검토하는 게 과하다고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