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받던 도중 통증 호소하며 쓰러진 훈련병
완전군장한 상태 구보·팔굽혀펴기 규정 위반
군기훈련 명령·집행 누가 했는지 밝혀야
훈련병에 대한 軍 초동 대처도 확인돼야
편집자주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ά) 행간을 다시 씁니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입대한 지 9일 된 훈련병이 군기훈련을 받던 중 쓰러져 민간병원으로 후송했지만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훈련을 받던 도중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진 훈련병이 병원으로 이송된 지 이틀 만에 사망에 이르렀다. 해당 부대 중대장 등이 규정에 없는 ‘완전군장 군기훈련’ 등을 시킨 정황이 나왔고, 육군은 해당 사건을 28일 강원경찰청으로 이첩했다.
29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숨진 훈련병 A씨는 지난 밤 떠들었다는 이유로 23일 오후 강원 인제에 위치한 육군 을지부대(1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군기훈련을 받았다. 훈련은 완전군장 상태로 보행(걷기)하다 구보하고 뒤이어 팔굽혀펴기를 한 뒤 다시 구보하는 절차로 진행됐다고 한다. A씨는 팔굽혀펴기 후 다시 구보를 하던 중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A씨와 함께 훈련을 받던 병사는 A씨 포함 6명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A씨의 상태가 안좋아보이자 집행간부에게 이를 보고했는데, 집행간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 훈련을 진행했다는 점이다. 얼마 뒤 훈련병은 쓰러져 의식을 잃었고, 의무실로 옮겨졌다 인근 국립병원인 강원도 속초의료원으로 후송됐다. 그러나 고온과 호흡 이상 증세를 보이던 A씨는 신부전이 발생했음에도 신장투석을 받지 못한채 강릉아산병원으로 재이송됐고 25일 오후께 사망 판정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육군은 26일 훈련병의 순직을 결정했고, 일병 계급을 추서했다.
규정 위반한 군기훈련 받은 정황 속속…“군기훈련 아닌 가혹행위”
훈련병 A씨가 규정을 위반한 군기훈련을 받았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육군 규정 120 ‘병영생활규정’에 따르면 군기 훈련 방법에는 구보가 없다. 또 완전 또는 단독 군장한 상태에서는 보행을 하도록 명시돼 있다. 팔굽혀펴기는 활동복이나 전투복을 입고서만 가능하다.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 구보를 하거나 팔굽혀펴기를 했다면 이는 명백하게 규정을 위반한 셈이다. 육군 관계자는 국방부 기자단을 만나 “군기 훈련이 규정에 부합되지 않은 정황이 있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규정 위반인지 등은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이뿐 아니라 300m 길이 연병장 한 바퀴를 돌아 선착순으로 돌아오는 훈련도 했다는 정황도 있다. 이 또한 사실이라면, 규정을 위반한 것이다. 전투화 등이 담긴 군장 내 빈 공간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자 조교들 지시로 책 여러 권을 넣어 군장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흘러 나온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은 2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군기훈련을 하는 것은 훈육 목적이지 고문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지 않냐”며 “법에 정해져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규정들을 지키지 않고 가혹행위를 한 것이기 때문에 군기훈련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가혹행위를 했다고 표현하는 게 적절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무리한 군기훈련이 사망 불렀나…군의 초동 대처도 밝혀져야 할 대목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8일 오전 A씨를 부검한 결과 외관상 명확한 사망 원인은 확인할 수 없다는 구두 소견을 군과 경찰에 전달했다. 다만 군의 한 소식통은 “횡문근융해증과 관련된 유사한 증상을 일부 보인 것으로 안다. 다만 추가 검사를 통해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전한 바 있다.
횡문근융해증은 열사병이 진행되면 이후에 나타나는 대표적인 병으로, 무리한 운동, 과도한 체온 상승 등으로 근육이 손상돼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병이다. 무리한 군기훈련으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유족 등에 따르면, A씨는 평소 특별한 지병 등도 없었다고 한다.
아직 의문스런 지점은 다수 남아있다. 육군 규정 120 병영생활규정에 따르면 병사를 대상으로 군기훈련을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중대장 이상 단위부대의 장이고, 집행자는 하사 이상 전 간부로 군기훈련을 집행할 때는 명령권자나 집행자가 반드시 현장에서 감독해야 한다. 무리한 군기훈련을 부여하도록 명령하고 집행을 감독했는지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
군기훈련을 받던 다른 훈련병들이 현장에 있던 집행간부에게 보고했는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계속 군기훈련을 진행했다는 문제제기도 있다. 군의관을 수배하는데 시간이 꽤 지체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는데, 쓰러진 훈련병에 대한 군의 초동 대처는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밝혀야 할 대목이다.
한편, 28일 이 사건은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로 넘어갔다. 군기훈련을 지시한 중대장(대위)과 훈련 당시 현장에 있었던 간부(중위)를 업무상과실치사죄와 직권남용가혹행위죄로 수사를 이어나갈 방침이다. A씨의 유가족은 군이 아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요청했다. 부검 결과는 한 달 뒤쯤 나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