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인터뷰서 “HBM3E 수율 80% 근접”
80% 수치 놓고 업계 기술 평가 분분
공급 안정화 자신감으로 해석 의견도
‘칩(Chip)만사(萬事)’
마냥 어려울 것 같은 반도체에도 누구나 공감할 ‘세상만사’가 있습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주요 국가들의 전쟁터가 된 반도체 시장. 그 안의 말랑말랑한 비하인드 스토리부터 촌각을 다투는 트렌드 이슈까지, ‘칩만사’가 세상만사 전하듯 쉽게 알려드립니다.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최신 HBM3E 칩의 목표 수율인 80%에 거의 도달했다.”(권재순 SK하이닉스 수율담당)
SK하이닉스의 한 임원이 미국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가 반도체 업계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업기밀에 가까운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율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도 놀라운데, 80%라는 수치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HBM 시장에서 확연히 앞서나가고 있는 SK하이닉스가 당당히 밝힌 수율에 대한 평가를 오늘 칩만사에서 짚어보겠습니다.
HBM 수율 통상 60% 이하인데 SK는 80%?
22일 업계에 따르면, 권재순 SK하이닉스 수율담당은 2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최신 HBM3E 칩의 목표 수율인 80%에 거의 도달했다”며 “생산에 필요한 시간을 50% 단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AI 시대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수율을 높이는 것인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율은 한 장의 웨이퍼에서 나올 수 있는 최대 칩 대비 양품(정상 제품)의 개수를 나타냅니다. 수율이 100%라면 한 장의 웨이퍼에서 양산된 모든 칩이 정상 제품이라는 의미죠. 수율이 높을수록 생산능력이 높다는 의미고, 수익성도 좋기 때문에 핵심 경쟁력으로 꼽힙니다.
수율은 사실상 가장 중요한 영업기밀에 해당됩니다. SK하이닉스가 HBM 수율을 이례적으로 밝힌 배경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HBM 수율은 통상 50~60%로 알려져 있습니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데이터 처리 속도와 용량을 극대화한 제품입니다. D램들을 TSV(실리콘관통전극)으로 연결하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수율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수율이 90%에 달하는 일반 D램 보다 공정 난이도가 높아 수율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 “양품 D램 기준일 것”
때문에 SK하이닉스의 80% 수율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옵니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의견과 함께, 계산 방식을 다르게 한 결과라거나 경쟁 과열로 인한 무리수라는 시선도 있습니다.
황철성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는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달리 어드밴스드 MR-MUF 기술을 채택하고 있어서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MR-MUF(매스리플로몰디드언더필) 기술은 칩에 열을 가한 뒤 칩 사이에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주입해 굳히는 기술입니다. SK하이닉스는 자사가 개발한 독자 기술인 ‘어드밴스드 MR-MUF’가 MR-MUF의 장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신규 보호재를 적용해 방열 특성을 10% 개선했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칩과 칩 사이에 얇은 비전도성 필름을 넣어 열로 압착하는 TC-NCF(비전도성 접착필름)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TC-NCF 방식이 단수가 높은 제품에서 수율을 높이는데 효과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HBM수율 80%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분야 전문가는 “HBM 수율이 80%라는 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며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경쟁이 과해지면서 나온 무리수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수율 계산 방식을 다르게 적용하면 80%도 가능하다고 봤습니다.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미 정상 제품으로 판별된 양품의 D램을 HBM 베이스 다이에 쌓는다고 가정했을 때 80% 수율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HBM에 들어가는 D램 각각의 수율부터 계산하지 않고, 양품 D램 여러 개를 쌓았을 경우의 수율을 계산하면 80%도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김 단장은 이어 “이례적으로 수율을 공개한 건 그만큼 HBM3E의 안정적 양산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라고 봤습니다. 삼성전자보다 확연히 수율 면에서 앞서나가고 있고, 공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의 HBM 수율을 40~50%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엔비디아에 납품은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퀄 테스트가 지연되고 있다며 품질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