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뉴스 보자마자 아기 손 박박 씻기고 전부 버렸어요”
알리, 테무 등 중국 초저가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장난감, 학용품 등에서 유해물질이 대거 검출되면서 어린이를 둔 가정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어린이 제품들이 워낙 고가인 만큼 중국 쇼핑몰의 저가 제품을 애용하고 있던 탓이다.
중국발 유해물질, 사실 새롭지 않다. 이전에는 주로 ‘환경호르몬’을 불렸다. 2020년에는 ‘아기욕조’에서 기준치보다 600배 넘게 검출되기도 했다.
알리, 테무 발 저가 어린이 제품에서 공통적으로 검출된 유해물질은 바로 프탈레이트계 첨가제다. 프탈레이트계 첨가제의 기준치는 총합의 0.1% 이하인데 슬라임에서는 212.7배(DEHP), 투명 필통에는 145.6배(DBP), 머리띠(DEHP 등)에서는 270.1배 초과 검출됐다.
어린이 제품의 안전성 시험 결과를 발표한 서울시는 “프탈레이트계 첨가제는 4차례 조사에서 모두 검출됐다. 알리·테무에서 파는 플라스틱 제품 대부분에 들어 있다고 보면 될 정도”라고 설명했다.
유독 어린이 제품에서만 이 물질이 초과 검출된 건, 어린이 제품에만 허용 기준이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프탈레이트계 첨가제는 본래 딱딱한 플라스틱에 유연성과 탄성을 더하는 화학물질인 터라 벽지나 바닥재, 상하수도관 등 일상 생활 곳곳에 널리 쓰인다.
국내에서는 어린이 제품과 의료용 수액 및 혈액 백에 대해 프탈레이트계 첨가제 허용 기준을 두고 있다. 이는 프탈레이트계 첨가제가 인체에 흡수되는 특성을 반영한 결과다.
프탈레이트계 첨가제는 피부 접촉으로는 흡수가 더딘 편이다. 프탈레이트에 오염된 공기를 흡입하는 게 가장 위험하고, 프탈레이트에 포장된 음식이나 물을 섭취해도 인체에 흡수될 수 있다.
물체를 입으로 가져가려는 행동 특성을 보이는 영·유아와 어린이들은 성인보다 프탈레이트계 첨가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젖병이나 빨대 등 영·유아가 하루 종일 입에 물고 있는 제품들도 많다.
프탈레이트가 인체에 흡수되면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작용한다. 비정상적 호르몬 작용을 유도하거나 정상적인 호르몬 작용을 방해해 성조숙증, 불임, 주의력결핍과다행동장애 등의 위험을 높인다.
성인에 비해 단위 체중 당 섭취량과 호흡량이 많다는 점도 문제다. 뇌 혈관 장벽 등이 완전 발달하지 않은 탓에 중추 신경계로 유해물질이 더 쉽게 유입된다. 영·유아들이 신경계, 내분비계에 손상을 입으면 그 영향이 평생 지속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연구에서는 어린이 제품은 안전 기준을 충족한 경우에도 주의할 것을 당부한다. 허용 기준 규제를 받지 않는 프탈레이트계 첨가제들이 있어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조사에 따르면 플라스틱 제품 등에 함유될 수 있는 프탈레이트류는 총 16종, 대체 물질이 7종이 있다.
이중 6종(DEHP, DBP, BBP, DINP, DIDP, DNOP)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과 유럽연합 등에서 함유량 허용 기준(0.1% 이하)을 적용 받는다. 이외의 프탈레이트계 10종과 대체물질 7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2021년 실린 ‘어린이제품 내 프탈레이트류 및 대체제의 규제와 독성자료에 대한 연구’는 “프탈레이트의 규제가 강해짐에 따라 대체 물질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며 “일부 대체 물질의 내분비계 교란 독성은 기존 규제 대상에 비해 현저히 작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체물질이 내분비계 교란을 포함한 유해성을 잠재적으로 내포할 가능성이 있다”며 “대체물질에 대한 안전성 검증이 지속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