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 사원식당 ‘그래잇’ 총괄하는 김민지 영양사
건강하고 맛있는 한끼 식사로 에너지 채우도록
다양한 이벤트식으로 먹는 재미까지 쏠쏠하게
‘든든한 지원군’ 허태수 회장, 직접 메뉴 제안도
〈히든 스팟〉 수많은 기업들에는 다양한 조직과 직군이 있습니다. 기업마다 고유 사업을 하는 가운데 다른 기업에는 없거나 차별화된 방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과 조직이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아도 각자 자기 자리에서 일하면서 차곡차곡 성과를 올리는 이들이야말로 미래를 만드는 영웅이며 비밀병기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히든 스팟’이라고 부릅니다.
[헤럴드경제=김은희 기자] “여기는 회사고 모두 직장인이잖아요. 업무 스트레스가 있을텐데 ‘그래잇(GREEAT)’에서만큼은 즐겁게 식사하며 에너지를 채우길 바라는 마음에서 여러 이벤트 식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 지하에 있는 사원식당 그래잇. 점심 배식까지 20분이나 남았음에도 직원들의 발걸음은 줄을 이었다. 이날 평소보다 빨리 긴 줄이 늘어선 건 한 달에 한 번 있는 ‘그래잇 데이’라서다.
그래잇 데이에는 점심 메뉴 3가지 중 2가지가 특식으로 제공된다. 이날은 컬래버레이션 형식으로 G코너에서는 유명 맛집인 중앙해장의 한우곱창전골이, E코너에서는 GS타워 1층 카페인 아미아스의 함박스테이크와 로제파스타가 각각 주요리로 나왔다.
밑반찬도 정갈했지만 디저트가 특히 돋보였다. 곱창전골과는 생망고 반 개와 견과류 정과가 제공됐고 스테이크·파스타는 그릭요거트, 초코 마들렌, 레모네이드와 함께 준비됐다.
일반식인 R코너에는 멘치카스 하이라이스가 나왔는데 특식이라고 이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특색 있었다.
저마다 먹고 싶은 메뉴를 받아 든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배를 채웠다. ‘혼밥’을 즐기는 이들도 상당했고 여기저기 ‘인증샷’을 찍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모두가 여유로운 점심시간이지만 바쁜 사람도 있다. 바로 식당 식구들. 그중에서도 그래잇을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김민지 총괄 매니저는 식당 곳곳을 오가며 배식은 잘 되고 있는지, 부족한 건 없는지, 위생은 잘 지켜지고 있는지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직원들의 솔직한 맛 평가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김 매니저의 중요한 점심 임무다.
김 매니저는 “식사의 만족도에는 메뉴뿐 아니라 위생, 공간, 환경 등 모든 게 반영되기 때문에 찬그릇 하나까지도 신경 쓰며 노력하고 있다”며 “영양사 출신이다 보니 현장에서의 어려움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어 소통하면서 힘을 모아 그래잇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 GS 사원식당은 2020년 10월 그래잇으로 새출발했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이 같은 해 초 취임하며 “직원들에게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를 제공하라”고 지시하면서 대대적으로 재단장한 것이다. 노후화된 주방설비를 교체했고 내부는 초록색 톤과 나무 소재를 살려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래잇은 ‘그래, 먹자’(GRE, EAT)라는 의미로 발음상 ‘훌륭해(GREAT)’라고 들리기도 한다. ‘직원들의 하루를 응원해 주는 식당’이 되겠다는 마음을 담아 이름 지었다.
‘스타영양사’로 불리는 김 매니저가 GS에 합류한 것도 그때다. 허태수 회장이 김 매니저를 콕 집어 ‘이런 사람을 채용하라’고 주문했다는 전언이다.
김 매니저는 경기 파주시 세경고의 영양사로 일하며 한정된 재원으로 기존 학교 급식에서는 볼 수 없던 랍스터 치즈 버터구이, 민물장어 덮밥 등을 제공하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tvN의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온더블록’에도 나온 그 영양사다. 그는 2016년 학생건강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교육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김 매니저는 “직장인들은 야근에 회식, 술자리가 잦다 보니 식사 관리가 정말 어렵지 않냐”면서 “회사에서의 한 끼 식사만큼은 건강하고 맛있게 챙겼으면 좋겠다는 허 회장님의 말씀에 너무 공감했다”고 회고했다.
김 매니저의 합류는 식단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고 이는 높은 이용률로 이어졌다. 하루 500명대에 불과했던 이용자 수가 평균 1800~2000명으로 늘었다고 GS 측은 설명했다. GS타워 입주 인원이 3500명 정도 되니 매일 절반 이상이 그래잇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김 매니저는 “이직 초반에는 식당 모니터링을 하면 직원들이 알아보고 ‘랍스터 언제 해주냐’고 물었는데 그 질문만 몇천 번은 들은 것 같다. 랍스터를, 그리고 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랍스터는 GS의 시그니처처럼 연말마다 꼭 제공하고 있고 장어, 키조개, 전복, 토마호크, 돈마호크, 한우 부채살 등 다양한 메뉴가 정말 많이 나가고 있다”고 했다.
맛 좋고 영양가 높은 음식은 기본, 평범한 하루를 특별하게 만드는 새로운 식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김 매니저는 강조했다. 그가 ‘이벤트 장인’으로 거듭난 것도 특별한 하루가 특별한 식사로 이어진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 매니저는 생일이나 회사 창립기념일은 물론 경칩·춘분 등 절기, 수산인의 날 같은 법정기념일, 지구의 날 같은 글로벌 기념일, 어디서 유래했는지 모를 ‘블랙데이’까지 챙긴다. 물론 영양사답게 그날에 딱 어울리는 식단을 준비하는 것으로 말이다.
그는 “학교에 있을 때 온갖 데이라는 데이는 다 붙여서 식단을 짰는데 그러다 보면 메뉴가 특별해지기도 하고 스토리텔링이 있다 보니 아이들이 좋아했다”면서 “회사에서 도전하기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식당 식구들과 서로 아이디어를 짜면서 지금은 다양한 테마 데이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컬래버레이션도 그래잇의 필살기다. 그간 런던베이글뮤지엄, 쉐이크쉑버거, 남영돈, 유용욱바베큐연구소와 같이 줄 서는 유명 맛집은 물론 BBQ, 사보텐, 타코벨, 매드포갈릭 등 대형 프랜차이즈, 풀무원 등 식품기업과 협업해 특별한 식탁을 선보였다. 섭외부터 단가 조율에 조리 협의까지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직원들의 반응이 좋아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컬래버레이션을 하고 있다.
김 매니저는 “처음에는 무턱대고 연락해 거절도 많이 당했지만 올해 들어선 역제안이 오는 업체도 여럿”이라며 “올해는 특별하게 유명 셰프를 초청하는 ‘셀럽 테이블 데이’도 진행하려고 추진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학교 급식과 기업 급식의 가장 다른 점은 무엇일까. 김 매니저는 “아이들은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맛있다, 어떻다 피드백이 되는데 직장인들은 현장에서 말을 안 하시는 편”이라고 했다. 커뮤니티 채널 ‘대시보드’와 모니터링단 ‘히어로즈’를 운영하는 것도 직원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특히 ‘식당을 구하자’는 의미를 담아 발족한 히어로즈는 식사 운영과 품질, 위생 등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을 듣는 핵심 창구가 되고 있다.
그래잇의 든든한 지원군이자 최고 비공식 히어로즈는 허태수 회장이다. 허 회장은 틈날 때마다 이곳에서 식사하며 맛은 물론 메뉴 구성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
어느 식당의 무슨 메뉴가 맛있으니 가서 먹어보라는 특별 미션을 주는 것은 물론 곰탕의 조미료 맛이 강한 것 같다거나 건강을 위해 돈가스 반찬은 지양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세세한 조언까지 아끼지 않는다. 실제 그래잇은 ‘허태수 히어로즈’의 의견을 반영해 조미료를 없앴고 튀긴 음식 대신 건강식을 추구하고 있다.
이날도 허 회장은 홍순기 GS 사장, 이태형 GS 최고재무책임자(CFO)와 함께 그래잇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가 선택한 메뉴는 함박스테이크와 로제파스타. 여느 직원과 마찬가지로 식판에 오밀조밀 차려진 식사를 즐겼다. 식사 도중 기자와 만난 허 회장은 “맛있네요. 잘 먹고 있습니다”라며 그래잇의 탄생 배경에 대해 “(직원들이) 잘 먹어야지요”라며 웃어 보였다.
이렇게나 다양한 식단을 선보였는데 더 나올 게 있을까 싶지만 김 매니저는 “할 수 있는 게 무궁무진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지금 하는 것만 보면 이것밖에 할 수 없겠지만 시야를 넓히면 도전할 수 있는 게 많다”면서 “메뉴부터 테마, 콜라보도 여러 가지가 있고 식사 운영이나 히어로즈 활동, 공간 배치 등 더 나은 그래잇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전했다.
더불어 올해는 ‘기본에 충실한 메뉴’에 집중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단체 급식의 한계를 넘는 노력을 통해 정성이 느껴지는 집밥 메뉴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김 매니저는 “3년 반의 그래잇 운영을 돌아볼 때 직원들의 신뢰도 어느 정도 쌓고 만족도도 높였으며 다양한 도전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움에 집중하면서 기본에서 놓친 것도 많다는 걸 느꼈다”면서 “잘하는 것을 유지하면서 기본에 충실한 메뉴와 서비스를 잘 챙기는 한 해를 만들겠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