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도형 한국송환 무효화
피해자 모임 “몬테네그로 대법 결정 존중”
테라-루나 ‘증권성 인정’ 관건
FTX 뱅크먼프리드 25년형에 그쳐…권씨 자산 2400억 추징
편집자주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a) 행간을 다시 씁니다.
[헤럴드경제=윤호 기자]‘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 권도형 씨의 송환 문제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앞서 몬테네그로 고등법원은 권씨의 미국 송환을 결정했다가 이를 뒤집고 지난달 한국 송환 결정을 내렸으나, 지난 주말께 몬테네그로 대법원이 권씨에 대한 한국 송환 결정을 무효로 하고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냈다. 권씨의 송환지를 법무부에서 정하게 된 것인데, 밀로비치 법무부 장관은 그간 수차례 권씨의 미국행을 원한다는 뜻을 드러낸 만큼 미국에서 재판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의 ‘테라-루나 사태’ 피해자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어차피 피해금액 돌려받을지 미지수…“‘미국행’ 속시원”
국내 피해자 사이에서는 손해금액을 과연 돌려받을 수 있을지, 더 나아가서는 한국에서 유죄판결을 받을지 미지수라는 의견도 나오는 만큼 기왕이면 미국에서 엄한 형으로 제대로 처벌받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다수 나온다.
테라·루나 코인 피해자 모임은 ‘권도형 한국 송환 무효화, 몬테네그로 대법원의 결정을 존중합니다’라는 입장을 냈다. 피해자 모임은 공지문을 통해 “범행에 가담한 일당들은 피해자들의 돈으로 꾸린 막대한 자산으로 선임한 호화 변호인단을 통해 재판을 받으면서 가족들까지 여유롭게 살고 있다”며 “권도형이 한국에 들어오면 재판을 지연시키면서 국민들의 관심이 끝날 때까지 시간을 기다린 후 항소심에서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재판받을 경우 테라-루나 코인이 증권으로 인정될 지도 관건이다.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처벌하려면 코인도 주식 같은 증권에 해당한다는 전제가 필요하지만, 우리는 코인의 증권성에 대한 판단을 정립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테라-루나 코인을 이미 증권으로 간주해 이익환수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또 유죄 판결이 난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혐의가 유죄일 경우 가장 무거운 혐의에 대한 형량의 2분의 1까지만 가중할 수 있어 솜방망이 처벌이 우려된다. 반면 개별 혐의별 형량을 모두 합산하는 미국에선 100년형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코인을 블록체인상 지갑에 꼼꼼하게 숨겨놨을 경우 몰수 자체가 힘들뿐더러, 권씨에게 직접 코인을 구매한 게 아닌 만큼 매수 금액을 전부 손해액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국내송환으로 피해자 구제를 예상하지만,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미국도 솜방망이 처벌? 국내송환이 구제에도 유리
하지만 최근 FTX 사태와 관련해 창업자인 뱅크먼-프리드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낮은 징역 25년형을 받아 ‘권씨가 미국으로 송환되면 국내보다 훨씬 엄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뱅크먼-프리드에게 내려진 형량은 검찰이 구형한 징역 40∼50년의 절반 수준이다. 그에게 선고될 수 있는 법정 최고 형량은 징역 110년형이었으며, 연방 보호관찰관은 징역 100년형을 권고한 바 있다.
또한 피해자 중 일부라도 피해 보전을 받으려면 우리 사법체계로 그를 단죄하는 것이 유리한 점은 명확하다. 검찰은 지난해 서울 성동구 성수동 고급 주상복합 등 권씨의 국내 자산 71억원을 포함해 공범들의 재산 2400억 원을 추징·보전해 놓은 상태다. 미국이 추산한 전 세계 테라 사기 피해액 52조 원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소액이나마 보상을 기대할 순 있다. 국내 피해자는 20만명대로 추산된다.
실제 한미 양국 모두 자국 피해자 구제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에 어떻게든 권씨를 데려가려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유죄가 나올 경우 양형에 참작을 받기 위해서라도 권씨가 해당국에서 피해 회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가상자산의 증권성이 인정되면 피해자들은 일반적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아닌 증권집단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소액주주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증권집단소송은 한 사람이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피해를 본 나머지 투자자도 똑같은 보상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