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제230조 ‘매수 및 이해유도죄’로 처벌… 대부분 벌금형
전문가들, 규제 및 처벌 위주 ‘선거 법제 개선 필요성’ 대한 목소리도
공직선거법 제6조 제2항, 각급 선관위 교통 편의 제공 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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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최근 인천의 한 선거구에서 고령의 유권자를 사전투표소까지 차량으로 실어준 50대 남성이 경찰에 입건됐다. 공직선거법상 유권자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해당 남성이 특정 후보에 대한 투표를 독려 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일각에선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투표소까지의 거리가 먼 지방의 경우 참정권 보장 차원에서라도 투표 당일 선거당국이 교통편의를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현재도 해외 투표의 경우 재외공관이 ‘투표셔틀’을 운영하기도 한다.
9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및 수사당국 등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제230조)은 투표·당선 등을 목적으로 유권자를 차량에 태워 투표소까지 태워주는 행위 등을 유권자 매수 및 이해유도죄로 금지하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기부행위’로 간주돼 처벌된다.
그동안 이 조항에 근거해 여러건의 형사 기소가 이뤄지고 유죄 판결도 누적됐다. 다만 형사 처벌이 된 피고인 중에는 이동하기에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차량에 태워 투표소까지 데려다준 마을 이장과 버스 기사 등도 있었다. 법원은 이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하면서도 노인들에게 교통 편의를 제공한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대전지법 홍성지원 형사1부(도형석 부장판사)는 2023년 1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버스기사 A씨와 노인회 총무 B씨에게 벌금 70만 원을 선고했다.
이들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일인 2022년 5월 27일 오전 10시경 충남 예산군 한 마을회관 앞에서 노인회 회원 32명을 A씨의 버스에 태워 사전투표 장소인 인근 중학교 체육관 앞까지 데려다주고, 투표를 마친 회원들을 다시 마을회관 근처까지 데려다준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A씨 등은 선거인 32명을 차량에 태워 투표소까지 데려다주는 방법으로 교통편의를 제공했다”며 “이는 선거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훼손하고 선거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로서 공직선거법은 이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A씨 등에 대한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마을 주민들에게 사전투표장까지 교통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그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며 “해당 범행이 선거 결과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했다”고 판시했다.
이보다 앞선 2018년 10월에도 대구지법 형사11부(손현찬 부장판사)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일에 노인들을 차에 태워 투표소까지 데려다준 혐의로 기소된 마을 이장 C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바 있다.
C씨는 경북 청도군의 한 마을 이장으로, 2018년 6월 8일 오전 마을회관에서 “사전투표 할 분들과 몸이 불편하신 분들은 마을 회관 앞으로 나와 달라”는 방송을 한 뒤, 노인 8명을 약 5㎞ 떨어진 청도군 면사무소까지 차로 태워다 준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C씨는 사전에 선관위로부터 ‘선거인에게 투표장까지 차량을 제공하지 말 것’을 교육받았고, 이미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두 차례 처벌받은 전력도 있는데도 이번 범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다만 “마을 이장으로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노인들에게 사전투표장까지 교통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등 범행 경위에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며 “선거인들에게 특정후보나 정당을 지지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거나 선거인의 수가 8명에 불과해 선거결과에 미친 영향이 크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을 사람들이 C씨에 대한 선처를 탄원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1심 판결 이후 C씨는 양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했지만, 2심을 맡은 대구고법 형사1부(박준용 부장판사)는 2019년 1월 C씨의 항소를 기각했다. 당시 재판부는 “C씨가 당뇨를 앓고 있고,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 현재 장애등급 5급으로 건강상태도 좋지 않으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점, 수년간 요양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등 사회와 지역을 위해 봉사를 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면서도 “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투표셔틀’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 선관위 관계자는 9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정당들의 합의 하에 교통편의 제공 주체가 선관위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하지만 일반인이나 특정 후보자 측에서 교통편의를 제공할 경우에는 특정 후보자를 위한 기부 행위가 될 수 있어 선거법 위반이 된다”고 설명했다.
공직선거법에는 이미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다. 이 법 제6조 제2항에는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읍·면·동선거관리위원회 제외)는 선거인의 투표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거주하는 선거인 또는 노약자·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선거인에 대한 교통편의 제공에 필요한 대책을 수립·시행해야 하고, 투표를 마친 선거인에게 국공립 유료시설의 이용요금을 면제·할인하는 등의 필요한 대책을 수립·시행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정한 실시방법 등을 정당·후보자와 미리 협의해야 한다’고 돼 있다.
유사한 ‘투표 셔틀’의 경우 재외 공관에서는 이미 실시되고 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주미대사관과 주중대사관, 주캐나다 대사관 등에선 해외에 거주중인 한국 유권자들의 투표를 돕기 위해 투표소인 대사관과 각 지역을 연결하는 셔틀 버스를 운영했다. 해외의 경우 셔틀 버스 운영 주체는 재외국민투표 선거관리위원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규제 및 처벌 위주로 돼 있는 선거 법제를 개선할 필요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완식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사람들을 동원해 표를 많이 득표하기 위한 고의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선의로 거동이 힘든 어르신들에게 교통편을 제공하려는 목적도 있을 것”이라며 “선거와 관련해서는 준법을 할 수 있도록 선관위에서 교육과 홍보에 보다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홍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선거의 공정성’이라는 차원에서 너무 복잡하고 엄격한 규정을 두기보다는 어느 정도 선거의 자유를 확보하는 방향성으로 법을 정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앞서 인천 강화경찰서는 지난 8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A씨를 입건 전 내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A씨는 사전 투표 기간이던 지난 6일 오전 8~9시 인천시 강화군에서 노령층 유권자들을 각각 송해면 투표소와 강화읍 투표소까지 승합차로 옮긴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 6일 “노인들을 사전투표소까지 태워주는 차량이 있다”는 112 신고를 받고 A씨의 신원 등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날 오전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선거가 끝난 뒤 A씨를 불러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관위 관계자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9일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선관위 차원의 별도 조치는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