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범죄자가 오고 싶어하는 나라’로 전락한 것 아닌가”
특경법 무기징역까지 기능하지만 양형기준은 ‘13년’
이달 사기범죄 양형기준 수정안 심의
전세사기범 입법 손질 필요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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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윤호 기자] “우리나라가 ‘범죄자가 오고 싶어하는 나라’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됐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최근 정례회의에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사기에 따른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경우 원칙적으로 무기징역까지 가능하지만,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양형기준으로 인해 권도형이나 전청조 등 수십억원대 사기범에게도 국민 법 감정에 미치지 못하는 판결이 내려지는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이달 말 양형위원회의 사기범죄 심의에 관심이 쏠린다.
법조문엔 무기징역 가능하지만 양형기준은 최대 13년
특경법에 따르면 사기에 따른 이득액이 50억원 이상일 때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 이득액이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일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라고 규정돼 있다.
반면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사기에 따른 손해액이 5억원 이상 50억 원 미만 범죄에 기본 3~6년, 50억원 이상 300억원 미만 범죄에 기본 5~8년을 선고하게 돼 있다. 손해액이 300억원 이상 범죄일 경우에도 기본 6~10년, 다수 피해자 등 가중 요소를 반영해도 최대 8~13년에 그친다. 법정형과의 격차가 매우 큰 셈이다.
이에 따라 재벌 3세를 사칭하며 수십억대 투자 사기를 벌인 혐의 전청조 씨는 법원이 이례적으로 양형기준(10년 6개월)을 넘어선 판결을 내린다고 강조했음에도 징역 12년 선고에 그쳤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전 세계 투자자에게 50조원 가량의 피해를 입힌 권씨 역시 검찰총장의 “범죄자가 오고 싶어하는 나라”라는 지적 속에 한국 송환을 고집하면서 솜방망이 처벌이 우려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사범 역대 최고형은 지난 2022년 대법원이 김재현 옵티머스자산운용 대표에게 확정한 징역 40년이다.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형량 범위는 과거 피고인에게 선고했던 판례 등을 담은 ‘종전 양형 실무’의 70~ 80%를 반영해 정해진다. 과거 사례를 바탕으로 양형기준을 만들다 보니 지금의 법 감정에는 미치지 못하는 경우 많을 수밖에 없다.
양형위원회는 이달 29일 사기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설정 범위, 유형 분류)과 전자금융거래법위반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설정 범위, 유형 분류)을 심의한다. 사기 및 금융범죄는 최근 피해액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서 법감정과 양형기준간 간극이 특히 큰 분야로 지목된다.
피해액 수백억원에도 인당 계산으로 솜방망이
‘건축왕 ’·‘빌라왕’ 등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전세사기 사건에 대해서는 양형기준을 넘어 입법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행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죄는 피해자별 피해액이 5억원을 넘어야 가중 처벌할 수 있다.
인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빌라 등 100여채의 보증금 148억원을 세입자 191명으로부터 가로챈 전세사기범에 징역 15년을 내린 오기두 판사는 이례적으로 118쪽에 달하는 판결문을 통해 “사실 판사로서 입법론을 함부로 논하면 안 된다. 3권분립 원칙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라면서도 “적어도 이 사건에서는 현 법률이 부족한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 문제는 의식주의 문제이고, 이런 의식주의 차이는 인간에게 큰 고통을 안긴다. 단순한 사기 사건이 아닌 인권문제이자 사회문제라는 뜻”이라며 “정부와 입법부, 사법부가 모두 책임져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인천 전세사기 사건에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4명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법무부와 대검찰청도 서민의 주거 문제를 위협하는 사기에 대한 강경 기조를 천명한 바 있다. 검찰은 대규모 전세사기와 같이 다수를 상대로 사기 범행을 저지른 경우 전체 피해액을 합산해 가중 처벌하는 법 개정안을 국회에 입법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