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의원, 4일 선거 유세 과정서 ‘혈서’

“자극적이고 국민 정서에 안 맞아”

선거판에 난데없는 ‘혈서’…이은재부터 정운천까지 ‘혈서의 역사’[취재메타]
전북 전주시을 선거구에 출마한 정운천 후보가 전북특별자치도청 앞에서 전주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하며 혈서를 쓰고 있다.[정운천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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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이용경 기자] ‘제 몸의 피를 내어 자기의 결심, 청원, 맹세 따위를 글로 씀. 또는 그 글.’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혈서(血書)’의 정의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혈서’를 쓰는 방식은 정치적 표현 수단으로 일반적인 ‘단식’이나 ‘삭발’보다는 극단적 방식이다. 과거 일제강점기나 군부 독재 시기에 항거했던 독립운동가나 정치지도자는 결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혈서’를 썼는데, 오늘날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종종 ‘혈서’가 지지를 호소하는 수단으로 쓰여 주목된다. 올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도 어김없이 ‘혈서’가 등장했다.

오는 4·10 총선에 전북 전주시을 선거구에 출마한 국민의힘 정운천 후보는 4일 전북특별자치도청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전북 발전을 이뤄내겠다는 결연한 의지”라며 혈서를 썼다.

3선에 도전하는 정 후보는 지난달 28일부터 “정권에 대한 전주 시민의 분노는 여당 의원인 내 책임”이라며 속죄의 의미로 7일째 함거(죄인을 실어 나르던 수레)를 타고 선거 유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정 후보는 “전주 시민이 느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분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자책했다.

그는 “전주 시민들의 분노와 아픔을 가슴 깊이 새기고, 전북의 미래와 희망을 위해 다시 묵묵히 걸어가겠다”며 “우리 아들, 딸들이 타지에 가서도 차별받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전북을 만들겠다. 오직 전북을 위해 여야 협치를 꽃 피우고 청년들을 위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과거에도 정치인들이 혈서를 쓰는 경우는 총선을 전후로 왕왕 있었다.

지난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미래통합당 서울 강남병 공천에서 컷오프된 이은재 전 의원은 탈당 이후 한국경제당 비례대표로 출마했다. 이 전 의원도 총선을 3일 앞두고 지지를 호소하며 혈서를 썼다. 이 전 의원은 당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범여권에 맞서 윤석열 (당시)검찰총장을 지켜내겠다”고 호소하며 ‘혈서 시위’를 벌였는데, 사실상 피가 아닌 ‘아까징끼(‘소독약’의 일본식 표현)’를 섞었던 것으로 드러나 한바탕 촌극으로 끝난 일화도 있다.

선거판에 난데없는 ‘혈서’…이은재부터 정운천까지 ‘혈서의 역사’[취재메타]
이은재 전 의원[연합]

이보다 앞선 2019년 1월에도 경기도 포천이 지역구인 김영우 전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하철 7호선 연장을 요구하는 포천시민 1만여 명과 함께 서울 광화문 집회에 참석해 혈서를 쓴 바 있다. 당시 집회 참석자들은 “통행권을 보장하기 위해 전철 7호선 예비타당성(예타) 조사를 면제해 달라”고 요구하며 삭발 시위도 함께 벌였는데, 김 전 의원은 이에 동조하며 혈서를 쓰고 지하철 7호선 연장을 주장했다.

선거판에 난데없는 ‘혈서’…이은재부터 정운천까지 ‘혈서의 역사’[취재메타]
김영우 전 의원[연합]

정치인들의 ‘혈서 퍼포먼스’를 어떻게 봐야 할까.

정치평론가인 이강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고문은 4일 오후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자극적이고 국민들 정서에 안 맞는 것이 아닌가 싶다”며 “100년 전이나 8~90년 전도 아니고, 지금은 자기 의사 표현 수단이 많은데 굳이 꼭 그래야 하나 싶고,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하고 싶은 얘기도 있고 각자의 사정도 있겠지만, 국민들이 보기에 썩 좋아할 것 같지 않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