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버스 노사, 12년 만에 파업…11시간 만에 철회
임금 인상률 4.48%, 명절수당 65만원에 극적 합의
노조 “사측 막말, 낮은 임금, 서울시 역할론” 문제 제기
사측 “급여 합치면 서울 버스 임금 낮지 않다” 반박
서울시 “준공영제 문제 개선 착수, 버스비 인상 없다”
편집자주 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a) 행간을 다시 씁니다.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28일 하루. 12년만에 서울 시내버스가 멈춰섰다. 다행히 버스 운행중단 11시간만에 운행 재개 결정이 났다. 그러나 노측도 사측도 속내를 들어보면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버스 운행 파업의 표면적 원인은 ‘임금 인상’이다. 노측은 ‘더 올려달라’했고, 사측은 ‘못 올려준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감정 싸움도 협상 결렬의 원인이 됐다. 노측은 ‘사측이 막말을 했다’고 했고, 사측은 ‘요구가 무리하다’고 했다. 이외에도 버스 준공영제 문제는 해결이 안됐다. 향후에도 서울 시내 버스를 둘러싼 노사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라 관측되는 이유다.
29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노조(서울 시내버스 노동조합)와 사측(버스운송사업 조합)은 전날 오전 4시부터 시작한 총파업을 오후 3시부로 전면 철회하고, 시내 버스 전 노선 정상운행을 결정했다. 노사는 임금 인상률 4.48%, 명절수당 65만원에 합의했다. 수당을 임금에 포함하면 실질적인 임금 인상율은 5.6%로 추정된다. 서울시버스노조 임금의 경우 2021년 동결, 2022년 5% 인상, 2023년 3.5% 인상됐다. 올해 사측은 2.5% 인상을, 노조는 12.7% 인상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됐다.
지난해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 전 지원제도’를 통해 노사간 갈등을 겪지 않고 협상을 조기에 타결한 것과 달리 올해 파업에 이른 계기는 표면적으로는 ‘사측의 막말’과 ‘임금 문제’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측은 노조에게 ‘돈 몇만 원 갖고 벌벌 떠는 너희가 파업할 수 있겠어? (파업을) 할 테면 해보라’라는 막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의 경우 노사는 임금 및 단체협상을 정식 조정 돌입 전 조기 타결한 바 있다.
노조 측이 지난 23일 쓴 ‘파업에 동참해 주십시오’라는 글에는 “사측은 7차례의 교섭과 2차례 사전조정회의까지 이어지는 동안 단 한번도 임금인상안을 제시하지 않았다”라며 “마지막 회의에서 우리가 들을 수 있었던 말은 조합원을 향한 비난과 경멸이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분노한 노조원들이 12년 만에 파업에 나섰다는게 노조원들의 설명이다.
노조는 그간 인상률과는 다른 높은 임금 인상률인 12.7%를 주장한 이유로 타 지방자치단체 버스기사 임금인상률이 서울시 버스 기사의 임금 인상률 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수년간 누적된 임금 격차를 해소하려면 올해엔 인상률을 예년보다 더 높여야 한다는 설명이다. 노조에 따르면 서울 버스의 경우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연평균 임금 인상률은 2.98%였지만, 인천 버스의 경우 5.54%라는 것이다.
노조는 그간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고 알려졌던 서울 버스의 시급도 인천보다 낮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인천 간선버스 5호봉 시급이 1만2560원인 반면, 서울은 1만2146원으로 서울 시급이 인천보다 낮아졌다는 주장이다. 노조 관계자는 “임금 역전으로 인천·경기도로의 운전기사 이탈이 심각해졌다”라며 “서울의 실질 생활비가 수도권 대비 높은 것도 문제”라고 했다.
사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사측이 지난해 7대 특별·광역시 버스기사 임금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인천은 서울의 95.4%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사측 관계자는 “포상금, 수당 등을 합친 월 임금은 서울이 더 높다”라며 “이 때문에 처음에 공무원 평균 보수 인상률과 같은 2.5%를 제안했던 것”이라고 했다.
노조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서울시가 직·간접적으로 ‘협상에 나섰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보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파업을 시작하자 올해 회의들에서 말이 없던 서울시에서 연락이 오더라”라며 “지난해와 달리 사전조정회의에서 시가 (올해는)능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노사는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올해 3월 23일까지 7번의 중앙 노사교섭과 2차례의 사전 조정회의를 열고 임금 교섭을 진행했으나 서울시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2년 만의 버스 파업으로 버스 준공영제의 이면도 수면위로 올라와 ‘개선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서울 시내버스는 2004년부터 ‘준공영제’로 운영 중이다. 준공영제란 지방자치단체가 버스회사에 재정을 지원해줘 버스 운영체계를 도와주는 제도다. 시내 전역에 버스 노선을 골고루 배치하고, 배차 간격을 유지하는 대신 민간 버스회사의 적자분을 시 예산으로 보전해준다는 것이 제도의 골자다.
운송 수입만으로는 매년 적자인 민간 버스회사들이, 준공영제 덕분에 서울시로부터 적자를 보전받아 수년째 흑자를 내고 있다. 문제는 2022년 서울시내 65개 버스회사는 716억원대의 순이익을 올렸고, 이를 임금 인상분에 쓰지 않고 주주 배당·임원 상여 등에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준공영제 시행 이후 2011년 2200억원이었던 서울시의 재정지원은 2022년과 2023년에는 8000억원대로 급증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버스회사에 대한 준공영제 지원 예산이 역대 최대 규모인 8915억 원에 달했다.
시는 문제 개선을 위한 용역에 착수했다. 윤종장 서울시 도시교통실장은 “준공영제 운행버스의 인상률은 다른 지자체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사측은 (타 지자체) 수준과 맞추기를 요구했다”며 “노조 측은 서울의 여러 생활 물가지수가 다른 지방 도시에 비해 높다는 점을 들어 양측이 합의를 찾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버스 기사의 임금이 1% 인상될 때마다 110억원 내지 120억원 정도 추가 재정 부담이 발생한다”며 “(이번 임금 인상으로) 600억원 정도 (재정) 부담이 생긴다. 이익이 버스 회사에 집중되는 상황을 고치기 위해 현재 준공영제 개선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서울시의 개입으로 올해 서울 버스 노사 갈등은 일단락 됐으나 일각에서는 내년은 물론 향후에도 서울 버스 노사 간 대립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분보다 이번 인상분이 턱없이 낮았기 때문이다.
한편 시는 재정 부담이 늘어 결국 버스요금이 인상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선을 그었다. 윤 실장은 “버스는 아시다시피 지난해 8월 (요금을) 300원 인상한 바 있다”라며 “그래서 당분간 요금 인상에 대한 요인은 바로 도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