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비롯 전국 의대서 집단사직 이어져

“증원 철회하고 정부 원점서 재논의해야”

대학총장들 “결재 최대한 미루겠다” 고심

의대교수 수천명 ‘사직서’...2000명 정원 손댈 수 있을까 [전국 의대교수 집단사직]
전국 의대 교수의 집단 사직이 시작된 25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사 가운과 전공서적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연합]

전국 의과대 교수의 집단 사직이 본격화했다. 사직 예고 첫날인 서울대 의대에서만 400명, 울산대 의대 433명 등 줄잡아 수천명에 이르는 의대 교수가 사직을 공식화했다. 일부 교수는 이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사직하고 의료 현장을 떠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유연한 대처’를 기조로, 의료계와의 대화에 나서고 있다. 다만 갈등의 핵심인 ‘의대정원 규모 2000명’에 대해 의료계에선 줄이는 방향의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어,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26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회(서울대 의대 비대위)는 400명 규모의 사직서 제출을 결정했다. 서울대 의대 비대위는 전날 총회 직후 성명을 내 “약 400여명의 교수들이 참석해 서울대 의대 비대위 활동 보고를 받고,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직서는 환자 곁을 떠나는 것이 아닌 정부와의 대화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빅5’ 서울대, 울산대 800명 사직...전국 줄사직 예고=서울대를 비롯한 ‘빅5’ 병원 소속 의대 교수의 사직도 이어지고 있다. 전날 울산대 의대에선 교수 433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울산의대 비대위는 전날 오후 5시 울산대 의대에 모여 산하 수련병원인 서울아산병원, 울산대병원, 강릉아산병원 교수들의 사직서를 접수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의대 증원으로 초래된 지난 한 달간의 의료 파행으로 중환자, 응급진료를 담당하는 교수의 정신적, 육체적 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고 호소했다.

연세대 의대에서도 전날 오후 6시 사직서를 일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균관대는 28일로 사직 제출 시점을 결정했다. 가톨릭대 의대는 이날 총회를 열고 시점을 논의할 계획이다. 의료계 안팎에선 전국 의대 교수가 이달 말까지 순차적으로 사직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비수도권 의대 교수도 집단사직에 나서고 있다. 원광대 의대는 최대 130명의 교수가 사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원광대 의대 관계자는 “전체 교수의 90%가 사직서 제출을 고려하는 등 강경한 분위기가 지배적”이라며 “2000명 증원을 우선 철회하고 정부가 원점에서 논의를 다시 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했다.

경상국립대에선 앞서 진행한 사직 관련 내부 설문조사에서 교수 201명 중 193명이 사직에 찬성했다. 대구가톨릭 의대 관계자는 “26일 임시 총회를 거쳐 29일까지 삼일 간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순천향대 의대의 경우 순천향대 천안병원에서 근무하는 교수 93명이 이미 사직서를 냈다.

의대 교수의 사직 최종결재권을 쥔 각 대학 총장의 고민도 깊어졌다. 이들로선 의대생 동맹휴학에 더해 교수 집단사직까지 더해져 사실상 ‘속수무책’인 상태다. 의대를 보유한 서울 소재 한 사립대 총장은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효력이 바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진료 중단이 현실화하는 일이 없도록 일단은 (사직서 결재를) 최대한 미룰 것”이라고 했다.

▶정부, 교수 사직 막을 수 있나...의료계선 협의 ‘회의론’=다만 의대 교수의 사직은 전공의와 달리 정부 차원에서 이를 제재할 방안이 뚜렷하지 않아 그 여파가 더욱 클 수 있다. 전공의와 달리 의대 교수의 사직서는 제출 한 달이 지나면 즉각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공의 사직에 대해선 이들의 고용기간이 정해져 있는 데다 ‘진료 유지 명령’이라는 행정명령을 발령했으므로 효력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의대 교수는 고용 기간 약정 없이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돼 있으므로, 민법에 따라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한편 의대 교수 사이에서는 전날부터 이뤄진 정부 대화 시도에 대한 회의적 반응도 나오고 있다. 전국의대교수협의회(전의교협) 소속 한 의대 교수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도 2000명 수치 자체에 대해선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 뭐하러 대화를 하느냐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내부에서 많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의대 교수는 정부가 의대 증원 정책 자체를 원점에 두고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조윤정 전의교협 비대위 홍보위원장(고려대 의대 교수)는 전날 브리핑에서 “의대 증원 2000명 철회는 무조건 한 명도 늘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라며 “의사 수 추계 센터 등 과학적인 근거 기반의 연구를 통해 의대 정원을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혜원·안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