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고질병’이던 불법 리베이트 행위
2010년 쌍벌제 도입으로 처벌 강화됐지만
처방권 지닌 의사가 ‘갑’…여전히 근절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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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정부가 의료계에 만연했던 ‘리베이트’ 관행에 손을 대겠다고 나섰다. 신고자에겐 최대 30억원의 보상금까지 내걸었다. 앞으로 두달 동안을 리베이트 집중 신고 기간으로 정하고 단속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 문제로 대립각을 세웠던 의료계에 ‘철퇴’를 내리겠다고 예고한 셈이다. 리베이트는 제약사가 의사들에게 건네오던 자금으로, 업계 내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일각에선 ‘쌍벌제 도입’ 이후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제약사와 의사들 사이에선 유지돼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리베이트는 제약사 등이 자사 의약품·의료기기의 신규 채택, 처방 유지 및 증대를 목적으로 병원이나 의사에게 부당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리베이트라는 명칭 자체가 법률에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형법, 보건관련법령(의료법, 약사법, 의료기기법) 등에 따라 의료 리베이트 행위를 규제하고 있다.
과거에는 병원이나 의사가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더라도 뚜렷한 형사처벌 규정이 없었다. 리베이트가 적발돼도 의사의 면허가 정지되는 경우도 없었다. 다만 의사가 보건소에 근무하거나 군의관으로 복무하는 등 공무원에 해당할 때 리베이트를 받으면 뇌물죄가 적용됐으며, 의료기관 개설자가 아닌 종사자가 리베이트를 받으면 배임수재죄로 처벌받을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10년 11월 리베이트 근절책을 내놓았다. 보건복지부가 의약품 판매 촉진을 위해 의·약사에게 음성적으로 판매 지원금을 제공한 제약사와 이를 받은 의료인을 함께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를 도입한 것이다.
리베이트 행위가 적발되면 의료인은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12개월까지 의사 면허 자격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다. 1차 위반 시 금품 수수액 2500만원 이상이면 자격정지 12개월, 수수액 300만원 미만이면 경고 처분이 내려진다. 리베이트 혐의로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기간에 의료행위를 하거나 3회 이상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 복지부 장관이 의사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쌍벌제 시행으로 처벌이 강화되자 의·약사와 제약사 영업사원의 연결고리가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의 ‘비공식적 관행’이 완전이 끊긴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리베이트가 여전히 알음알음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견본품 제공 ▷학술대회 지원 ▷임상시험 지원 ▷제품 설명회 등의 경제적 이득은 허용되는데, 불법 행위에 따른 처벌을 피하고자 제품설명회를 빙자한 리베이트 방법 등이 활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약품영업대행업체(CSO)를 이용하는 방식도 있다. 제약사가 CSO에 과도한 수수료를 지급하고, CSO가 제약사 대신 리베이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CSO가 의약품 공급자에 해당하지 않는 점을 악용한 ‘꼼수’다. 제약사 입장에선 CSO의 불법 리베이트가 적발되더라도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이다.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현금성 리베이트 지급 사례도 나타난다. 기프티콘 등 모바일 쿠폰을 전달하거나, 무작위를 가장한 경품 행사를 진행해 고급 외제 승용차 등 경품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직원에게 ‘가짜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이를 인출해 재입금하는 방법으로 리베이트용 불법자금을 조성하는 사례도 알려진 바 있다.
리베이트 쌍벌제가 도입된 지 10년 이상 흘렀지만 사각지대를 악용한 불법 리베이트가 근절되지 못한 채 관행처럼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약업계와 의료업계에서 의사가 절대적 ‘갑(甲)’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제약사에게 병원과 의사는 회사의 매출과 생살여탈권을 좌우할 수 있는 ‘갑 중의 갑’이다. 제약사들이 아무리 혁신적인 약을 개발 및 생산해 시장에 출시해도 처방권을 쥐고 있는 의사들이 정작 처방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게 된다. 특정 질환에 쓰이는 수많은 의약품 중에서 어떤 약을 쓰는가는 전적으로 의사의 권한이다.
특히, 복제약(특허 만료된 오리지널 신약과 약효와 성분이 같은 카피약)에 대한 국내 제약사들의 높은 의존도가 리베이트를 부추기고 있다. 수십개의 제약사가 품질이 똑같은 복제약을 생산하다 보니 결국 의사에게 누가 더 좋은 서비스(리베이트)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제약사의 영업 승패가 가려진다.
제약업계와 의료업계 간의 갑을 관계가 확인된 사례도 있다. 쌍벌죄가 도입되던 2010년 당시 임선민 한미약품 사장은 전국의사총연합을 방문해 정부에 리베이트 쌍벌죄를 건의한 것과 관련해 사과했다. 의사들이 한미약품 약 처방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기 때문이다. 이 여파로 한미약품은 2분기 의원(중소 전문병원)급 상대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16.7%가 하락했으며 전체 매출과 영업이익이 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제약사 직원을 의사 집회에 동원하는 등의 ‘의사 갑질’ 의혹이 나오는 배경에도 이같은 힘의 논리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지난 3일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를 앞두고 직장인 익명 게시글 애플리케이션(앱)인 블라인드 등에는 일부 의사들이 제약회사 영업사원에게 집회 참석을 강요한다는 글이 여럿 올라왔었다.
정부는 오는 5월 21일까지 지금까지 불법 리베이트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리베이트 쌍벌제 수사가 개원의사들에게 초점이 맞춰졌던 것을 고려하면 개원의 중심으로 구성된 의협이 이번 정부의 단속 주요 대상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