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경찰, 법제화 시도 수없이 많았지만 ‘줄폐기’ 위기

성인 대상 디지털성범죄에 위장수사특례 포함 못할듯

사기방지기본법도 폐기 가닥…사기정보분석원 흐지부지

“애초에 익명성 보장 안되는 한국서 언더커버는 불가능” 지적도

‘신분위장수사’ 어디까지 허용되나…법안 줄줄이 폐기 목전[취재메타]
경찰이 오랜 기간 신분을 숨기고 범죄조직에 잠입해 정보 수집을 하는 내용의 영화 신세계[미디어 그룹 NEW 제공]

편집자주취재부터 뉴스까지, 그 사이(메타·μετa) 행간을 다시 씁니다.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신분을 위장해 잠입수사를 하는 영화 ‘신세계’의 경찰 이자성(이정재 배우), 살인범을 잡기 위해 범인의 애인에게 접근하면서 단란주점 영업부장으로 위장 취업하는 영화 ‘무뢰한’의 경찰 정재곤(김남길 배우).

둘 다 영어로는 언더커버(Undercover)로 불리는 신분위장(또는 신분비공개) 수사다. 하지만 신분위장수사는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도 허용되지 않은 수사방법이고, 법제화된다고 해도 우리나라에선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가능성이 높다고 현직 경찰들은 말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 몇년간 국회에서 사기방지기본법, 마약류관리법, 성폭력처벌법에 수사 특례로 위장수사 방법을 포함시키고자 했지만 모두 임기가 얼마 안 남은 21대 국회에서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한 채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짙다.

14일 국회와 경찰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이 지난 2021년 11월 발의한 성폭력처벌법 일부개정안에는 디지털 성범죄에서 아동·청소년대상 범죄에 한정하지 않고 신분비공개수사와 신분위장수사의 특례를 적용하는 조항이 담겼다. 피해자가 성인인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도 위장수사를 할 수 있게 만들려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이 법안은 첫 단계인 소위 심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3년이 넘도록 국회서 계류중이다.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29일까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 자동폐기 수순을 밟게 된다.

2022년 8월 국민의힘 김용판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기방지기본법도 마찬가지다. 이미 소관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위장수사 수사특례가 사생활 침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 삭제된 상태다. 경찰 내부에서는 “애초에 청소년성보호법에 있던 위장수사 특례를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가져온 것이라 그대로 통과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게 수정된 법안도 아직 자구심사 단계에 머물러있어 법안 자동 폐기가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문제는 해당 법안이 있어야 경찰이 추진중인 사기정보분석원 설치가 가능해지는데, 이 역시 동력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사기정보분석원은 보이스피싱 등 고도화되는 사기범죄 수사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기관이다. 해외 유사 사례로는 영국의 ‘사기정보분석원’이나 싱가포르 ‘사기대응센터’ 등이 있다.

지난해 한국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던 마약범죄에서도 위장수사의 필요성이 끊임없이 대두되어 왔지만 단 한 건도 법안이 통과된 바가 없다.

지난해 5월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은 현행 제도 내에서 마약류 범죄에 대한 잠입수사가 제한돼,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법안에 ‘위장수사 허용’이 일부 포함돼 있으나 해당 법안 역시 21대 국회가 폐회될 경우 자동 폐기 수순을 밟는다.

다만, 위 발의된 법안들이 위장수사에 대해 엄밀한 연구나 실효성에 대한 검증 없이 단순히 포함했기 때문에 아쉬울 것도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시도청의 한 경찰 간부는 “사이버 수사와 마약범죄 수사, 사기범죄 수사가 접근하는 방법이 완전히 다른데, 여기에 청소년성보호법에서 인정된 위장수사 특례를 단순히 가져와서 붙이면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언더커버가 법제화된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실효성 있게 사용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많은 현직 경찰들이 의문을 표했다.

마약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경찰은 “언더커버 경찰이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은 미국과 캐나다”라며 “둘 다 땅이 넓고, 이민자들이 국민 다수를 차지하는 다인종 국가”라고 말했다. 즉, 새로운 신분을 만든 경찰이 연고가 없는 지역에 가서 위장수사를 하기 딱 좋은 환경이라는 설명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3~4명의 사람만 거치면 평균적으로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등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좁은 사회이므로 언더커버 작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언더커버와 일정 부분 공통점을 지니는 ‘기회제공형 함정수사’는 마약범죄와 사기범죄 등 각종 범죄 수사에서 활발히 쓰이고 있다. 유사 수사는 대법원 판례로도 일부 ‘합법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해당 판례에 따르면 경찰과 협조자(민간인)가 함정수사의 일환으로 체크카드 수거 및 현금인출 등 보이스피싱 가담을 제안하는 게시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자 피고인 A씨는 여기에 자신의 텔레그램 아이디를 댓글로 달았다. A씨는 실제로 이 범행에 가담했다. 그러다 덜미가 잡혀 전자금융거래법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자 ‘자신은 범행 의도가 없었는데, 수사기관과 그 협조자가 자신을 유혹해 함정수사를 했다’고 반발했다.

A씨는 유죄를 선고한 1심에 이어 2심 결과도 불복하고 항소했지만 당시 대법원 재판부는 “피고인이 본인이 받을 수수료를 높이기 위해 협의에 나섰다는 점 등을 들어, 범행과정에 경찰이 일부 개입했다더라도 위법한 범의유발형 함정수사로 보이지 않고 이미 범의를 가진 피고인에게 단순히 범행의 기회를 제공한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