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합, 세계 여성의 날 맞아 정치인 저격
“오세훈, 가사노동 폄훼, 외국인 노동자 차별”
관심 끌기엔 성공했지만, 비판용 비판 한계
서울시 반박 성명 “여성연합, 좌파단체” 규정
불필요한 정치논쟁화 우려, 정책 설명 충분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한국여성단체연합이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오세훈 서울시장, 대전시장, 충남지사, 넥슨코리아를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해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들여다볼수록 과연 이 방법밖에 없었나, 아쉬움이 커진다.
여성연합은 일단 유력 정치인의 이름을 내세워 사회적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특정인을 ‘성평등 걸림돌’과 같은 무자비한 표현으로 낙인찍기 전에 과연 실제로 그러한 지 면밀히 살펴봐야 했다.
오세훈 시장은 서울시의 대표 여성가족정책인 저출생 대책 시리즈를 5탄까지 발표하면서 전국 지방정부의 여성가족정책을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1탄 난임부부 지원, 2탄 임산부 지원, 3탄 다자녀가족 지원, 4탄 신혼부부 지원, 5탄 주거 지원 등 다방면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탄은 난임부부에게 전국 최초로 난자동결 시술비용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난해만 2만6000여쌍의 부부가 이 혜택을 봤다.
2탄 임산부 지원은 모든 산모에게 100만원 상당의 산후조리 경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3탄 다자녀가족 지원은 다자녀 기준을 3자녀에서 2자녀로 완화하고 다자녀 혜택을 자녀 나이 18세까지 부여하는 내용이다. 4탄 신혼부부 지원은 이자 지원 대출한도를 3억원까지 늘리고 4%까지 이자를 지원하는 내용, 5탄은 가족양육친화 주택을 공급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부분 전국 지방정부 중 최초로 시도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여성연합은 서울시의 수많은 여성가족 친화적 정책은 외면하고 보고 싶은 면만 봤다.
여성연합은 오세훈 시장이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을 제안해 가사돌봄노동의 가치를 폄훼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했다며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했다.
과연 이러한 지적은 타당했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일하는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제안됐다. 일하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막고 원활한 사회 복귀를 돕자는 취지다.
오세훈 시장은 “한국에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원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국내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다.
국내 일하는 여성들이 가사노동과 양육 부담을 호소하면 으레 나오던 싱가폴의 값싼 필리핀 가사도우미 이야기를 정책화한 것이다.
정부는 이런 제안을 타당성 있게 받아들여 이르면 오는 6월께 외국인 가사도우미 100명을 국내에 시범적으로 들여올 계획이다. 일단 시범사업을 통해 정책의 효용성이 평가될 것이다. 도입도 하기 전에 섣불리 평가할 문제가 아니다.
정책 입안자 입장에서도 300만원 정도의 국내 가사도우미 대신 100만원 수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할 수 있다면 성공적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 참여하는 필리핀 가사도우미 또한 경제적 손익을 따져 득이 된다는 판단 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다. 공급과 수요가 적정선에서 만난다면 성공할 수도 있는 사업이다.
시작도 안 한 이 사업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 차별” 등의 표현을 써가며 특정인을 ‘성평등 걸림돌’로 낙인찍어야 했나 되묻고 싶은 이유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국가 중 최저 수준인 0.6대까지 내려왔다. 이 정도 출산율은 전쟁 중인 나라에서나 나타난다고 한다. 이러한 추세가 수년간 지속되면 학생 감소에 따른 학교 폐교, 군 장병 감소와 국방력 저하, 경제 규모 축소 등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적정 수준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국에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화두를 던지고 실행에 옮기는 게 정치인이 할 일이다. 성공적이면 국민에 의해 중용되고 실패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죽는다.
‘성평등 걸림돌’과 같은 무자비한 표현으로 특정 정치인을 낙인 찍는 건 명예살인에 가깝다.
지목된 정치인이 평소 성평등 해소에 열심인 사람이었다면 폐해는 더 크다.
그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모든 성평등 해소 정책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기 때문이다.
한편, 서울시는 여성연합의 발표에 대해 즉각 대변인 명의 성명서를 내고 반박했다.
이 대목에서 아쉬운 점은 서울시가 여성연합을 좌파단체로 규정하고 이번 논쟁을 스스로 좌우논쟁으로 비화시켰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성명서에서 “좌파단체인 여성연합의 납득할 수 없고 일방적인 성평등 걸림돌 선정은 정치 공격”이라고 했다.
서울시는 행정기관이지 우파 단체가 아니다. 굳이 이 사안을 좌우논쟁화해야 했나.
문제의 본질은 사회단체가 오세훈 시장이 추진한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근거로 가사돌봄노동의 가치를 폄훼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했다며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한 것이다.
이어 서울시는 성명문에서 “오 시장과 서울시는 여성이 살기 좋은 서울 조성과 여성의 인권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선제적 정책을 다양하게 추진해 나가고 있다”면서 “(오 시장의 성평등 걸림돌 선정은) 오 시장이 추진하는 서울시의 여성친화정책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와 이해도 없는 행동”이라고 맞받았다.
서울시는 이런 식으로 시 차원에서 지금까지 벌여온 다양한 여성가족정책을 다시 한 번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여성연합을 납득시키려 했다면 충분했을 것이다. 그것으로 논쟁은 종결됐을 것이며, 국민 또한 훨씬 쉽게 이번 사안의 본질을 이해했을 것이다.
국민들은 소모적인 정치논쟁에 질색한다. 실용적 논쟁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