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나면 치료 못받고 죽을 수 있어”

“최대한 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

“아프면 죄” “응급실 뺑뺑이 무서워”…의사파업에 국민들 ‘각자도생’[취재메타]
지난 22일 오전 서울 한 대형병원에서 의료진들이 응급실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23일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지 나흘째로 접어들면서 의료공백이 극심해지고 있다. 이에 시민들은 의료공백의 불운한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와 가족, 주변사람들에게 안전을 당부하면서 엄혹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직장인 김 모씨(24)는 요 며칠간 아침 가족 단톡방에서 “절대 다치지 말자”고 서로를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는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늘 ‘차 조심하라’, ‘사람 조심하라’며 걱정하신다”며 “의사들이 병원에 없어서 혹시라도 사고가 나거나 다치면 치료도 못 받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특히 전공의들이 이탈한 시기와 맞물려 전국에 눈과 비가 내리면서 시민들의 안전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버스로 출퇴근 하는 강모(33)씨는 “버스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가 운전기사 뒷자리라고 해서 그 자리가 비면 이동해서 앉았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최대한 내 목숨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도로교통상황이 안 좋아서 웬만하면 외출도 자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1일까지 대형병원 전공의들의 사직 러시로 약 1만명(9275명)이 환자 곁을 떠났다. 서울시내 주요 대형병원에서는 수술이 최소 30~50%가량 축소됐다.

실제로 직장암 3기로 지난해 세브란스병원에서 수술받았으나, 항암 치료가 종료된 지 두 달 만에 암이 간으로 전이돼 수술을 앞두고 있었다는 한 환자는 20일 입원, 21일 수술 예정이었으나 일방적으로 취소당했다.

의사가 비운 자리는 간호사들이 떠맡았다. 본래 의사가 해야하는 처방을 대신하고, 심정지 환자가 발생하면 심폐소생술(CPR)을 맡고 있다. 병원 지시에 따르곤 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불법 의료행위라 추후 고발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간호사들에게 병원을 내맡긴 의사들은 거리로 나와 도 넘은 말을 쏟아냈다. 서울시의사회는 전날 저녁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제2차 ‘의대 정원 증원·필수의료 패키지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를 열고 과격한 발언을 이어갔다. 좌훈정 서울시의사회 정책이사는 “우리 말 듣지 않고 이렇게 정책 밀어붙이는 정부야말로 국민을 볼모로 삼은 것 아니냐. 환자가 죽으면 정부 때문”이라고 말했다.

좌 이사는 또 박민수 복지부 차관에 대해서는 “야, 우리가 언제 의대 정원 늘리자고 동의했냐”며 “네 말대로라면 데이트 몇 번 했다고 성폭력 해도 된다는 말과 똑같지 않냐”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의사들의 연이은 선 넘는 발언에 여론은 싸늘하다. 환자 곁을 떠난 의사들을 향해 ‘의사가 장의사가 되어가고 있다’, ‘흰가운 대신 검은가운 입혀라’는 반응마저 나온다.

정부는 이날 오전 의사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불법 집단행동은 존경받는 의사가 되겠다는 젊은 의사들의 꿈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한 방법”이라며 “부디 잘못된 선택으로 오랫동안 흘려온 땀의 결과가 한순간에 사라지지 않기를, 또 그런 위험 속으로 젊은 의사들을 등 떠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