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억원 규모 횡령사건, 양형기준상 기본 2~5년형
1인기획사·가족회사 특성 고려해 감경…1년6월~3년내 선고
개인계좌 횡령건은 무죄…“자금 위탁관계 취지에 부합”
[헤럴드경제=이민경 기자] 박수홍 1인 기획사 계좌의 돈을 꺼내 쓴 부분은 유죄, 박수홍 개인 계좌의 돈을 꺼내 쓴 부분은 무죄.
지난 14일 선고된 방송인 박수홍의 출연료 등 수십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친형 박모씨(박씨) 1심 판결에서 관건은 바로 회삿돈이냐, 개인돈이냐였다. 회삿돈을 쓴 부분은 유죄가, 개인돈을 쓴 부분은 무죄가 나왔다.
먼저, 박씨가 회사 법인카드로 상품권 등을 구매해 수홍씨 부모에게 생활금 명목으로 전달하고, 백화점에서 수홍씨의 연예계 활동에 도움이 되기 위해 지인들에게 와인을 선물하며 결제한 사실은 횡령으로 인정됐다.
1심 판결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배성중)는 “피해회사들의 자금 원천이 대부분 수홍씨의 연예 활동으로 인한 수입이었다고 하더라도 일부 지분을 가진 주주나 소속 연예인에 불과한 수홍씨 개인 또는 그 부모를 위한 용도로 사용된 것은 피해 회사들의 업무 목적에 부합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법원은 박씨가 이미 유명 연예인인 수홍씨의 방송출연 기회를 늘리기 위해 관계자들에게 청탁을 하거나 접대비를 지출할 만한 별다른 유인이 없다고 봤다. 게다가 정말로 연예 활동 지원이라는 업무 용도로 사용할 의사였다면 마땅히 그에 부합하는 회계처리를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수홍씨의 양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회사는 수홍씨 개인과 명확히 구별되는 법인격이기에 본인 또는 부모의 생활비로 사용된 것 역시 잘못됐다고 본다.
재판부는 “따라서 이는 불법영득의사가 인정되는 횡령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또한 박씨가 허위 직원을 등록해 회사 법인계좌에서 급여 형식으로 돈을 이체한 사실도 횡령으로 인정됐다. 박씨는 재판과정에서 ‘수홍씨의 동의 내지 용인 하에 급여 명목의 비용처리로 절세하려고 했으며, 실제로 인출된 급여 중 일부는 수홍씨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허위 직원들에게 지급된 급여들이 현금으로 인출되어 그 중 일부가 최종적으로 수홍씨에게 전달되었고 수홍씨도 이러한 방식의 수익분배에 동의한 것으로 인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회사에 실질적으로 수입을 벌어다주는 수홍 씨의 의사에 부합하는 것이었다거나, 절세를 위한 목적이었다는 등의 사정과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서 회사의 자금을 자신 또는 제 3자의 이익을 위하여 임의로 사용·처분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수홍씨의 방송출연료가 유일한 수입원인 두 회사는 친형 박씨에 의해 각각 7억원, 13억원, 도합 20억원의 피해를 봤다. 또한 장기간에 걸친 횡령으로 법인 회계와 개인 회계가 뒤섞였다. 이 경우 박씨가 받을 기본형의 범위는 징역 2년~5년이다.
하지만 박씨 개인의 사적 용도로 사용된 것이 명백한 아파트 관리비, 변호사 선임비 등 1억원을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데다, 사실상 피해회사들이 1인 회사 내지 가족회사인 점이 감경요소로 감안되어 징역 1년6월~3년 내에서 선고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박씨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처음 기소된 횡령금액은 62억원이었으나 재판과정에서 횡령으로 인정된 금액이 20억원으로 많이 줄어든데다, 감경요소까지 더해지면서 예상보다 ‘낮은’ 형량이 선고된 것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수홍씨 개인계좌에서 박씨가 꺼내 쓴 돈들은 횡령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수홍씨의 매니지먼트와 재산관리를 도맡고 있는 형제에 대한 도의적인 관계 측면에서, 또 부모의 생활비로 쓰이는 점에 대해 수홍씨가 사실상 허용하고 있었다고 본 것이다.
재판기록에 따르면 수홍씨는 “형(박씨)에게 계좌를 맡긴 것은 내가 연예 활동으로 바쁘고 개인적으로 ,이를 신경 쓸 여력이 없는데다, 형이 재산을 잘 불려준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또 “형이 월급으로 500만원만 가져가겠다면서 저를 위해서 살겠다는 말을 했고, 저는 저를 위해 산다는 사람에게 자금관리의 대가로 얼마를 가지고 가라는 말을 할 수는 없어 알아서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결혼을 안 한 자식이고 부모님에 대한 부양은 제가 잘 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진술 등을 토대로, 수홍씨와 박씨 사이의 자금관리에 관한 위탁관계는 제3자들 사이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위탁관계와는 성격이 사뭇 다르다고 봤다. 즉, 박씨에게는 광범위한 자금 사용에 관한 재량권이 부여되어 있었기에 자금 사용 내역을 일일이 수홍씨에게 보고하거나 증빙자료를 엄밀하게 갖춰 놓았어야 할 의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판결문은 “당초 개인 계좌 위탁 시점부터 어느 정도의 양해가 되어있던 것으로 보인다. 부모의 생활비나 잡비, 기타 부모가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비용들은 설령 그 자금 지출의 주체가 박씨였다고 하더라도(또한 실제로 부모를 위해 지출된 것인지, 박씨 가족의 생활비로 지출된 것인지를 정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으나) 위탁관계의 취지에 반한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따라서 개인계좌 사용건은 무죄가 선고됐다.
박씨와 함께 기소된 형수 이씨는 공범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가 보기에 이씨는 회사 업무에 실질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던 것이다.
재판부는 “피해 회사 법인카드의 사용은 실질적인 운영 주체인 박씨의 단독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고 그 과정에서 , 이씨가 법인카드의 사용을 통한 자금 횡령의 구조에 어떠한 의사결정이나 관여를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이씨와 마찬가지로 사내이사 등으로 등재된 전력이 있는 수홍씨의 부모 역시도 마찬가지로 법인카드를 일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들과 달리 이씨에 대해서만 명목상의 이사 직위만을 근거로 법인카드를 이용한 횡령행위의 공모·가담 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수홍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노종언 변호사는 항소 하겠다고 했다.
노 변호사는 선고 직후 취재진 앞에서 “이씨 무죄 판결에 대해서는 검찰과 상의해서 항소를 적극적으로 개진할 예정”이라며 “증빙된 자료상 이씨의 필체가 다수 발견됐다. 자신이 자금 관리 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주장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울러 “실형이 나온 것에 대해서는 절반의 성공”이라며 “하지만 많이 낮은 형량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박씨와 이씨 부부는 지난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수홍씨의 출연료로 운영되는 회사 2곳을 운영하면서 수십억원대를 횡령한 혐의를 받았다. 뒤늦게 형 부부가 돈을 빼돌리는 사실을 알게된 수홍씨가 이들을 2021년 4월에 횡령 혐의로 고소했다. 2022년 10월 기소된 후 11월 21일에 첫 재판이 시작되어 1년 4개월여만에 1심 선고가 나왔다. 검찰은 지난달 10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박씨에 징역 7년, 형수 이씨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양측 모두 항소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날 법정구속을 면한 박씨는 불구속 상태로 항소심을 준비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