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산 LFP 배터리 사용 중견車 업계 “마른 하늘 날벼락”

중견 완성차 직원 “한국산 배터리 쓰고 싶어도 못 써”

정부 보조금 개편안 사각지대 ‘대책 필요’ 목소리도

〈난 누구, 여긴 어디〉 일하는 곳은 달라도 누구나 겪어봤고 들어봤던 당신과 동료들의 이야기. 현재를 살아가는 기업인,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을 다룹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LFP 배터리 쓴 게 죄인가요”…중견車 업체 직원들 남모를 속앓이, 왜? [난 누구, 여긴 어디]
전기차 충전이 이뤄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서재근 기자] 국내 중견 완성차 제조사 대리점에서 근무하는 A씨는 올해 초부터 판매 실적 걱정에 한숨이 멈추지 않는다고 합니다. 최근 정부가 공개한 전기차 보조금 개편방안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우선 지난 6일 환경부가 공개한 ‘2024년 전기차 구매보조금 개편방안(이하 개편안)’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회 충전 주행거리가 길고, 충전속도가 빠른 고성능 전기차, 배터리 에너지밀도가 높고, 재활용 가치가 높아 환경 부담이 적은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게 환경부 설명입니다. 여기에 8개 권역(서울·경기·인천·강원·충청·영남·호남·제주)에 전산시스템을 갖춘 직영 AS센터를 갖춘 제조사만이 성능보조금 전액을 받을 수 있도록 했죠.

또 하나, 기존 전기차 보조금이 전액지원되는 차량가격 기준을 당초 5700만원 미만에서 올해 5500만원 미만으로 낮추고, 국제표준 운행기록 자기진단장치(OBD)를 단 전기차에만 지급되는 배터리 안전 보조금도 도입했네요.

중견 완성차 업계 관계자들은 “개편안의 내용을 하나하나 따져보니, 생각나는 브랜드가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바로 미국의 전기차 제조사 ‘테슬라’인데요. 실제로 테슬라는 지난해 9월 중국 CATL의 LFP 배터리를 탑재한 모델Y 후륜구동(RWD) 모델을 5699만원에 출시, 말 그대로 흥행 잭팟을 터뜨렸죠.

어찌 보면 업체 관계자들의 해석도 틀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국산 모델Y만 놓고 보더라도, 우선 가격 제한으로 보조금 100% 지원이 불가능해진 데다 OBD를 달지 않은 차량은 한국 시장에서 사실상 테슬라뿐이니까요.

그런데 왜 정작 환경부 발표 이후 테슬라보다 국내 중견 완성차 관계자들의 볼멘소리가 이어지는 걸까요. 이와 관련 A씨는 “‘친환경’이라는 명목 아래 사실상 철저하게 소수의 큰 기업 밀어주기나 다름 없습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국내 중견 완성차 업체에서만 20년 넘게 일하고 있는 B씨도 불만을 털어놨는데요. 환경부의 개편안 공개 이후 앞서 지난해 말 전기차를 계약한 고객들의 전화가 하루에도 몇통씩 온다고 합니다. 보조금이 줄어드는지 물어보는 내용이 대부분이라고 하는데요.

B씨는 “지난달까지 계약만 하고 전기차를 받지 못한 고객들이 2000여명에 달하는 데 개편안으로 보조금이 줄어들게 되면 그에 따른 손실분을 회사에서 보전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자체가 회사에는 큰 부담”이라고 토로했습니다.

이어 B씨는 “불과 최근까지도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자’고 외친 정부가 느닷없이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단 전기차에 불리한 보조금 정책을 내놨어요.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보다 최소 30%가량 더 싼 LFP 배터리를 배제하는 것이 과연 ‘전기차 가격 안정화와 보급확대’라는 취지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는 언론 보도 등을 통해서도 언급이 됐던 얘긴데요. 중견 완성차 관계자들의 ‘설움’이 폭발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B씨는 “고래 싸움에 늘 터지는 건 새우의 등”이라며 “시장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기업에 대한 무관심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닙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특히, B씨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생산하는 전기차는 중국 기업에서 생산한 LFP 배터리가 탑재되는데요. 향후 출시할 신차들 역시 모두 중국산 배터리 기반이죠. B씨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선 결국 특정 기업만 살아남을 것”이라며 중국산 LFP배터리를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B씨는 “솔직하게 ‘중국산’을 쓰고 싶어서 쓴 것이 아니라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협업 제안을 모두 거절했기 때문에 중국 업체에 손을 내밀게 된 것”이라며 중국의 모 배터리사 문을 두드렸을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메이저 완성차 제조사에 비해 턱없이 판매량이 적은 중견사를 위해 새 라인을 깔고, 그에 맞는 배터리를 개발할 수 없다며 외면하는데 무슨 수로 새로운 전기차를 개발하고,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까요. 대안이 없어 선택한 LFP 배터리로 전기차를 개발해서 판매하는데 이제 또 정책이 바뀌면 더이상 어떻게 살아남으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